일본 경찰의 고문으로 '영혼 자살' 상태에서 거짓 자백을 해 20년 동안 복역한 재일 한국인의 재심 공판에서 일본 검찰은 "유죄 증거 입장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20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남성은 가슴 속의 한을 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재판장으로 향하는 박용호 씨. 사진-연합뉴스

28일 일본 오사카 지방법원. 방화 살인과 사기미수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형이 확정돼 20년 동안 복역하다 법원의 재심 결정으로 이날 법정에 선 재일 한국인 박용호(50) 씨는 "방화 살인을 하지 않았다. 나는 무죄다"며 절규했다.

검찰 역시 "모든 증거를 검토한 결과 박 씨의 유죄를 주장하지 않겠다. 또 증거입증도 하지 않겠다"며 "재판장의 판단을 기다리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박 씨는 오는 8월 결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박 씨의 사건은 21년 전인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7월22일 저녁 오사카시 히가시스미요시에 있는 주택에서 불이 나 당시 11살이던 아오키 메구미 양이 불에 타 숨졌다. 박 씨는 사망한 여아의 어머니와 내연관계였으며, 용의자로 지목돼 방화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경찰은 보험금을 노린 방화 살인으로 판단했다.

박 씨와 동거녀 2명 모두 2006년 최고 재판소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하지만 박 씨의 변호인단이 2009년 자연발화 가능성을 보여주는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며 재심을 청구했다.

오사카지법과 고법은 심리 끝에 2012년 3월 재심을 시작하기로 하면서 두 사람은 지난해 10월 20년 만에 석방됐다.

유죄의 결정적 증거가 됐던 자술서에는 자동차에서 휘발유 7.3ℓ를 플라스틱 통에 옮겨 담은 뒤 마루에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고 적혀있었다. 또 40㎝ 높이의 불꽃을 뛰어넘어 집 밖으로 나왔다는 내용도 있었다.

변호인단은 자술서에 기록된 내용이 부당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영상을 법정에서 공개됐다. 변호인단은 연소실험 영상을 찍었다. 휘발유를 뿌리기 시작한지 20초 뒤 아궁이의 불씨에 불이 붙자 실제 사건 현장 그대로 만든 차고지는 금세 불바다가 됐다. 화상을 입지 않고 빠져 나오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그동안 끈질기게 박 씨가 유죄라는 사실을 물고 늘어졌던 검찰 역시 이날 법정에서 공개된 영상을 보며 더이상 박 씨가 유죄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박 씨는 이달 초 한 신문사 기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는 편지에서 "조사실에 내 딸의 사진을 붙여놓고 똑바로 보도록 경찰이 강요했다. 다리를 꼬고 앉으면 '똑바로 앉으라'며 복사뼈를 걷어찼다"며 경찰의 가혹한 수사 과정을 밝혔다.

박 씨는 당시를 돌아보면서 "공포와 절망이 내가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이성이 무너졌다. '영혼이 자살한' 상태에서 거짓자백을 했다"고 울부짖었다. 그때의 심리상태에 대해 "전문가에게 분석을 의뢰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