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모(32) 씨는 올 설에도 고향 경남 마산을 찾지 않는다. 그는 경북 칠곡에 있는 한 고시원에서 오는 3월 19일에 있을 경찰공무원 시험공부에 매진할 계획이다. 졸업을 앞둔 2008년 처음 경찰공무원 시험을 쳤고, 올해로 9년째다. 그동안 20번 가까이 시험을 쳤지만 아깝게 떨어진 경우가 많아 쉽게 포기할 수 없다. 정 씨는 "이곳에서 동대구역까지 가려면 1시간 40분을 나가야 하고 기차표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가족 친지들이 그립지만 어차피 합격 전에는 이곳을 나가지 않을 각오로 들어왔다.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50명 중 대부분이 연휴에도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생활하고 있는 이 고시원은 작은 방 한 칸과 세끼를 제공한다. 정 씨는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 월 55만 원에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올 8월 퇴직하시기 때문에 부모님으로부터의 지원은 올해까지로 예정돼 있다. 그 때문에 올해가 마지막이란 각오로 시험에 임하고 있다. 고맙게도 5년째 사귀고 있는 연상의 여자친구는 정 씨를 믿고 기다려주고 있다. 정 씨는 "계속되는 낙방에 소방직 등 다른 시험에 도전해보려고 생각했지만 과목이 달라 그것도 쉽지 않다. 주변에서는 그만하라고 권하기도 하지만 이제 돌이킬 수 없게 됐다"고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서울에서 감정평가사에 도전하고 있는 김모(30) 씨도 정 씨와 비슷한 경우다. 4년째 관악구 신림동 고시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그도 이번 연휴에 고향인 부산에 가지 않기로 했다. 시험 일정이 예년보다 앞당겨져 고향에 다녀오기면 그만큼 공부할 시간이 줄기 때문이다. 김 씨는 "고향에 다녀온다면 최소 3일은 걸리기 때문에 시간적 부담이 크다.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신체적·심리적으로 무리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최모(여,22,광진구 화양동) 씨는 학비를 벌기 위해 부산행을 포기하고 서울에 남았다. 대학 3학년인 그녀는 지난달 30일부터 집 근처 대형마트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설맞이 선물세트를 판매하는 일이다. 일주일 동안 일하면 50만 원을 벌 수 있다. 그녀는 이 돈을 새 학기 등록금에 보탤 계획이다. 최 씨는 "왕복 11만 원이 넘는 KTX 비도 부담이고, 부모님 얼굴 뵙기도 마음이 편치 않다. 부모님은 고향에 왔다고 가라고 하셨지만 공부를 핑계로 서울에 남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취업과 아르바이트 때문에 고향행을 포기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취업포털 사람인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구직자 10명 중 7명이 설 연휴 기간에도 구직활동 계획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그 이유로 '쉬면 불안해서(38.1%)', '놀기에는 눈치 보여서(32.7%)', '구직활동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서(32.7%)', '입사를 원하는 기업의 채용이 진행 중이거나 할 예정이라서(24.5%)' 순으로 응답했다(복수선택). 또 아르바이트 포털사이트 알바천국이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50.4%가 '설 연휴에 아르바이트를 계획하고 있다'고 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