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경남 창원시 동읍 주남저수지 인근 무논에서 먹이 활동하는 재두루미들이 카메라에 잡혔다. 경남도공보관실 최종수 씨 제공

# 주민 입장

- 지주 동의없어 사유재산권 침해
- 보호구역 묶여 채소재배 불가능
- 땅값까지 떨어져 오도가도 못해

# 환경단체 입장

- 철새 지키기 최후의 방어선
- 보호 영역 저수지 한정 안될 말
- 민관 합동 종합관리계획 수립을

세계적인 철새도래지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동읍, 대산면 일대 주남저수지를 두고 주변 완충 지역을 현 상태로 보존해야 한다는 환경단체와 재산 및 생활권을 보호하려는 주민들이 오랜 기간 갈등을 빚고 있다. 저수지 인근 주민들은 지금껏 철새와 습지보호 등으로 재산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고 소득을 높일 시설채소 재배 등에도 제한을 받는다며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환경단체는 철새도래지이자 중간기착지인 주남저수지는 물론 인근 지역을 더는 훼손 없이 보존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주남저수지 일대 개발을 둘러싼 주민과 환경단체 간 갈등은 2009년 저수지 인근 47만8270㎡에 창원일반산업단지 조성과 함께 불거졌다. 이 산단은 경남도(당시 허가권자)와 낙동강유역환경청 간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통해 '재두루미와 큰기러기 등의 먹이터인 창원산단과 저수지 사이 에 완충지대인 무논(겨울철에도 높이 20㎝ 정도로 물을 가둬놓은 논)을 조성'하는 조건으로 허가가 났다.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갈등은 창원시가 지난해 말 창원산단 인근에 대산웰컴일반산단 조성 허가를 내줬다가 백지화하는 과정에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창원시는 관련 기관 협의에 나섰다가 '무논 조성지 내 산단 조성 불가'라는 낙동강유역환경청의 통보를 받고 산단 허가 자체를 취소했다. 또 창원시는 완충 지역에 감잎차 가공시설 설치를 허가했다가 뒤늦게 취소하는 등 오락가락 행정으로 주민과 환경단체 간 갈등 증폭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 주민 "개발 차단은 사유권 침해"

창원시 대산면이장협의회, 부녀회, 새마을협의회 등은 2009년 창원산단 조성과 관련, 산단 경계로부터 250m까지 무논을 조성하도록 한 것은 주민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사유재산권 침해라며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사유재산권을 제한하려면 주민설명회와 동의 등 행정절차를 거쳐야 함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고 환경단체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수용했다는 주장이다.

김종욱(52) 대산면이장협의회 회장은 "창원산단은 주남저수지와 직선거리로 2.2㎞나 떨어져 있다. '주남저수지 인근'이라며 개발을 못 하게 하는 것은 막연하게 농지 수백만 ㎡를 철새보호지역으로 묶어놓는 것"이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저수지와 상당 거리에 떨어진 곳까지 무논으로 지정하는 것을 철회하고 저수지 경계로부터 500m까지의 농지를 사들여 무논으로 남겨 놓는 게 이치에 맞다"고 덧붙였다. "창원산단 주변 농민들은 무논 조성 탓에 고소득을 올릴 시설채소 재배를 하지도 못하고 있다"고 주민들은 토로했다. 게다가 2009년 무논 조성 결정과 이번 대산웰컴산단 사업 백지화 이후 땅값마저 떨어졌다고 주민들은 하소연했다. 시설채소를 재배할 수도 없는데 농지를 팔고 고향을 떠나려 해도 팔리지 않아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무논 조성 이야기가 나오기 전만 해도 3.3㎡당 땅값이 평균 30만∼35만 원이었으나 지금은 사려고 나서는 이도 없어 속만 끓이고 있다"며 "주남저수지 관리계획을 명확하게 재수립해 보존과 개발에 대한 선을 분명하게 그어야 한다"고 말했다.

■ 환경단체 "현 상태대로 보전을"

마창진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는 지난해 11월 말 창원시가 대산웰컴산단 조성을 위해 경남도 등과 협의 절차에 들어가자 이를 저지하는 데 총력을 집중했다. 주남저수지 인근에 창원산단이 조성된 것만 해도 용납할 수 없는데 다시 산단을 조성하려는 것은 주변 생태환경을 파괴하는 행위라며 창원시 등을 성토했다. 결국, 대산웰컴산단의 백지화를 이끌어냈고, 최근에도 주남저수지 완충 지역에 허가한 감잎차 저장시설도 행정 오류로 말미암은 것임을 따져 허가 취소를 성사시켰다.

환경단체는 무논 조성이 재두루미 등 철새가 안정적으로 서식하게 하는 최후의 보루라고 보고 더는 개발 없이 주남저수지 완충 지역을 현 상태로 보전해야 한다는 확고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마창진환경운동연합 임희자(47) 정책실장은 "창원산단 조성 추진 당시에도 반대 여론이 상당했다. 그때 환경전문가가 무논 조성을 제안했고 다시는 산단과 같은 개발을 하지 말 것과 완충 지역의 의미로 무논을 만들기로 했다. 더는 생태환경을 교란하는 행위가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 생태환경 보존 큰 그림 그려야

환경단체는 주남저수지 주변 개발과 보존 목소리가 오랜 기간 충돌하는 것은 종합관리계획 부재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환경전문가와 환경단체, 주민, 지자체가 참여해 주남저수지의 생태 용량과 철새의 서식 형태 등을 함께 논의해 절대적으로 보존해야 하는 핵심 지역, 완충 지역, 개발할 수 있는 지역으로 나누는 등 명확하게 큰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도 창원시가 뒷짐만 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종합관리계획이 있어야 주민의 소득 창출 방안 마련과 생태환경 보존이 가능하다고 환경단체는 강조한다.

환경단체는 "주민 측이 주남저수지 경계 인근을 생물 다양성 관리계약 대상 지역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재두루미는 저수지 안이 아니라 저수지와 3㎞ 떨어진 곳에서 서식해 막연하게 대상 지역을 선정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마창진환경운동연합은 창원시가 주남저수지 보호와 세계적 생태관광지 계획 수립을 위한 TF팀을 구성할 때 주민과 환경단체, 전문가 등 사회구성원이 골고루 참여하도록 적극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 주남지 생태학적 가치

- 전세계 철새의 1% 서식·중간 기착지
- 2만5000여 마리 월동…동아시아 도래지 등록

주남저수지는 전 세계 철새의 1%가 서식하거나 중간기착지로 찾는 세계가 주목하는 철새도래지로, 생태 환경적 의미와 가치를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동아시아·호주 수조류 도래지 네트워크에 등록됐고 2008년 10월 람사르 총회 당시 주요 방문처였으며, 해마다 람사르 습지의 기준치를 옷도는 2만5000마리 이상의 철새가 찾는다.

1920년에 조성된 이 저수지는 창원시 의창구 동읍과 대산면 일대 602㏊(5.97㎢) 규모로 , 주남(285㏊), 동판(242㏊), 산남(75㏊) 등 3개 저수지로 구성돼 있다. 동읍·대산면 지역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며, 우기에는 홍수 조절 역할도 한다. 늪지인 데다 저수지 안에 초지, 소택지가 있어 갈대, 물억새 등이 자생하고 있으며 연중 저수량이 거의 일정하다. 주남저수지는 겨울에도 물이 좀처럼 얼지 않고 각종 먹이가 풍부하여 겨울 철새뿐만 아니라 여름 철새, 텃새의 서식지로 천혜의 조건을 갖췄다.

주남저수지가 철새도래지로 부상하게 된 것은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반이다. 가창오리 등 철새 수만 마리가 이곳으로 날아들어 월동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1994년부터 2012년까지 조류 162종이 관찰됐고 갈수록 늘어 2013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는 210종이 확인됐다. 이 중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종 1급이 7종에 달하고 2급 28종이며 국제적으로 멸종에 직면한 보호대상만 해도 18종에 이른다.

재두루미는 전 세계에 5500∼6500마리뿐이다. 우리나라에 1920마리, 중국 1000∼1500마리, 일본 3142마리 정도다. 번식지와 월동지가 없어지고, 오염 등으로 수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주남저수지는 재두루미의 중요한 월동지다. 마창진환경운동연합의 모니터링에 따르면 2013년 189마리, 2014년 237마리이던 것이 지난해에는 312마리로 늘었다. 전 세계 재두루미 중 3%가 이곳을 찾는다. 저수지로부터 3㎞ 이내 농경지인 백양들과 송양들에서 먹이활동을 한다.

창원시는 1990년부터 저수지 경계 농지를 매입, 생태환경을 보존하는 생물 다양성 관리계약에 나섰으나 계획했던 55만6260㎡ 중 아직 17% 수준인 9만4422㎡를 사들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