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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간 떼어 살릴 수 있다면…" 탈북민 동료의 약속

탈북민북송반대부산 실행위원

  • 국제신문
  • 김화영 기자 hongdam@kookje.co.kr
  •  |  입력 : 2015-11-02 19:23:01
  •  |  본지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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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경화·생활고 20대女 사연 듣고
- 오늘 이식수술, 병원비도 지원

"북에서 온 아가씨가 다 죽어갑니다. 한 번 가볼래요?" 경찰서 보안계 형사에게서 연락이 온 건 지난 1월이었다. '탈북난민북송반대 부산시민연대' 실행위원인 김태희(여·43·사진) 씨도 '북한이탈주민'(탈북민)이다. 함경북도 회령이 고향인 그는 2007년 한국 땅을 밟았다. 중국에서 10년간 지내다가 네 번을 북에 강제소환되는 우여곡절을 거쳤다. 그때의 끔찍한 경험을 누군가 또 겪으면 안 된다며 탈북민 인권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부산 해운대백병원을 찾아 숙희(가명·여·27) 씨를 만났다. 간경화로 고생 중인 숙희 씨의 얼굴에는 핏기가 없었다. "죽을 준비까지 다 한 걸요. 손 내밀 곳도 더 없고…." 이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얼마나 많은 희망과 체념을 반복했을까 생각하니 속이 탔다.

사정이 딱했다. 16세에 혼자 남한에 온 숙희 씨는 처음에 골수염을 앓았다. 뼛속에 세균이 침투하고 있다고 했다. 치료비가 없어 임대아파트 보증금 700만 원을 빼 썼고, 탈북민정착금과 주거비 등을 몽땅 털어 넣었다.

한고비를 넘으면 이내 다른 시련이 숙희 씨를 괴롭혔다. 기초생활보장수급비 48만 원을 받아 방세로 35만 원을 냈다. 허기는 하루 한 끼, 라면으로 때웠다. 직장을 얻으려고 식당과 공장 문을 두드렸지만, 북한말을 쓴다며 텃세를 부리는 동료와 약한 몸 때문에 오래 못 버텼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중에 피를 토했다. 병원에서 '식도정맥류'라고 했다. 스트레스가 반복되자 간이 딱딱해지는 급성간경화까지 발전했다.
김 씨는 굶어 죽은 친오빠가 생각났다. 간암으로 죽은 탈북민도 떠올랐다. "절대 너만은 버려두지 않을게." 김 씨는 숙희 씨와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간을 떼줄 마음까진 없었다. 목사 두 명이 간 이식을 하기로 했기 때문. 그러나 '비혈연 관계'여서 이식할 수 없다고 했다. 김 씨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고향이 같다며 밀어붙였다. 경찰관에게 보증을 서달라고 졸라 '이식에 영리 목적이 전혀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800만 원의 후원금이 모였지만 5500만 원의 수술·진료비를 충당하기엔 역부족. 서울아산병원에 우선 수술부터 해달라며 재차 선처를 구했다. 아내의 간이식을 반대하던 남편도 "마이너스통장을 만들어 보태겠다"며 응원했다.

김 씨는 "이식해준 나도 간이 정상화하는 1년간 정상생활을 못한다"면서도 "모든 일의 최우선은 숙희 씨를 살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씨의 간 70%를 떼어 숙희 씨에게 옮기는 수술은 3일 오후 서울아산병원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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