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부산 연제구 도시철도 교대역 인근에서 한 지역주택조합추진위 조합원들이 조합 추진위의 회계 장부 등을 공개할 것을 요구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강덕철 선임기자

- 새 조합은 설립인가 못 받아
- 조합원 "추진위가 고의로 속여"
- 관할 구 "경찰에 수사 의뢰"

부산지역 한 지역주택조합추진위원회가 또 다른 재건축조합이 일부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땅에 아파트 건설을 추진하려다 말썽을 빚고 있다. 사실상 다른 조합이 소유한 땅에 아파트를 지으려던 계획이었는데 분양권 매입을 통해 내 집 마련 꿈에 부풀었던 조합원들의 재산상 피해가 우려된다.

4일 부산시 등에 따르면 부산 도심의 한 지역주택조합추진위(A조합)가 640세대 규모의 아파트를 신축하려는 부지에 1991년 설립된 다른 재건축조합(B조합)의 부지가 있는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주택법에 따르면 지역주택조합이 주택 건설 계획 승인을 받으려면 95% 이상의 토지소유권을 보유해야 하고 같은 사업지역 내 복수의 조합은 허용하지 않는다. B조합은 아직 해산되지 않고 있고 이 조합의 지분(25.7%)을 상당수 매입하지 않고는 사업을 진행할 수 없다.

600여 명에 이르는 A 조합원은 초기부터 A조합 측이 이를 숨긴 채 분양 계약금 등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그동안 1인당 계약금 1500만 원, 중도금 2100만 원 등 합계 3600만 원(전체 200억 원가량)을 지불했다.

최근 뒤늦게 이를 안 조합원들은 비상대책위를 꾸리며 대책 마련에 나섰다. 신주현 조합 비상대책위원장은 "조합 추진위 측에서 적정 부지를 확보하지 못해 사업 진행 여부가 불투명한데 조합원에게 이에 대한 설명을 전혀 하지 않았다"며 "조합원들이 낸 많은 돈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A조합은 추진위만 갖춰져 있을 뿐 조합 설립 인가를 받지 않아 관리 감독의 손길도 제대로 미치지 못하고 있다. 관할구청 관계자는 "A조합은 공식적인 조합 설립 인가를 받지 않아 현재로써는 추진위와 회원들 간의 계약관계만 성립한다"며 "구청에서는 추진위 내부의 문제에 간섭할 수 없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해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영산대 서정렬(부동산학과) 교수는 "인가를 받지 않은 A조합은 사업 주체라고 볼 수 없다"며 "이 때문에 공공기관에서도 조합원들을 보호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추진위 측 사업대행사 관계자는 "이미 B조합 측의 부지를 일부 매입했고 나머지 땅을 싸게 사려다 보니 사업이 늦어지고 있다"고 해명했다.

부산시에 따르면 현재 부산에서는 총 21개소에서 지역주택조합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 중 조합설립인가를 받은 곳이 7곳, 조합설립인가를 신청한 곳이 2곳, 준비 단계인 추진위가 12곳에 이른다. 주택사업장을 착공한 곳은 한 곳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