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익금으로 지역서점 지원

- 골목 문화 거점으로 차별화

- 대형 서점에 대적할 길 모색

부산 사상구 학장동 부산서점협동조합은 요즘 해운대에서 수거해 온 헌책을 새 책으로 손질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수거해 온 헌책은 약품 처리 등의 과정을 거치면 깔끔한 새 책으로 변신한다. 이 책은 저소득층에 전달되거나 판매된다. 판매수익금은 동네서점 살리기 기금으로 사용된다. 

해운대구와 부산서점협동조합이 공동으로 펼치고 있는 '유즈드 북' 사업이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3일 해운대구에 따르면 지난 4월부터 시작한 이 사업은 주민들의 열렬한 호응 덕에 석 달 만에 무려 3만 권의 책을 모았다. 이날 하루에만 헌책 800권이 수거됐다. 

헌책 수거함이 배치된 곳은 좌동 중동 반여동 등 아파트 밀집지역 10개 단지다. 사업 초기만 해도 헌책 수거가 잘될까 걱정했지만 주민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주민들로서는 따로 분류할 필요 없이 수거함에 손쉽게 안 보던 책을 헌납할 수 있어서다. 

해운대구 관계자는 "눈에 띄는 장소에 헌책 수거함이 있어 책이 많이 모이는 것 같다"며 "생각보다 많은 책이 수거돼 동네서점 살리기 기금도 많이 모일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아파트에서 모은 헌책은 부산서점협동조합으로 일단 집결된다. 조합은 판매할 수 있는 책들을 가리는 선별 작업을 거친다. 선별된 책은 겉표지를 살짝 깎아내는 '커팅' 작업을 한다. 커팅된 책은 다시 일회용 소독약을 뿌려 세심하게 닦는다. 이 과정을 거친 헌책은 새 책과 다름없다. 부산서점협동조합 김정량 이사장은 "유즈드 북 사업의 장점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와 같이 절판돼 가치가 크게 올라간 책을 재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누렇게 변질된 책이라도 가치가 있으면 가공한다"고 설명했다. 

조합은 이처럼 가공한 새 책을 판매하거나 지역 저소득층에 기부한다. 판매 수익금은 해운대구 동네서점 살리기 기금으로 사용된다. 현재까지 모인 기금은 600만 원. 이 기금은 해운대구 12개 동네서점의 홍보와 문화행사, 간판 제작 등에 사용된다.

해운대 동네서점은 자체적으로도 책과 결합한 다양한 문화 활동을 펼치며 지역 주민과 함께하고 있다. 동네서점 살리기 사업을 펼치고 있는 해운대구는 동네서점이 있는 골목 곳곳에 인문학의 향기가 번지도록 하는 게 목표다. 최근 반여동 한양서적에서는 작은 문화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현악 3중주 연주단 '아모스'가 공연했다. 공연이 시작되자 학원으로 향하던 동네 꼬마나 장을 보던 주부 등이 발길을 돌려 서점 앞에 몰렸다. 해운대 동네서점들은 이외 해운대해수욕장에서 활동하는 '버스킹' 그룹부터 클래식 연주가까지 동원해 다양한 연령층을 위한 공연을 준비 중이다. 

음악 공연뿐 아니다. 논술 교실을 열어 학생의 지식을 넓혀주거나, 문학창작교실을 운영해 시민에게 올바른 글쓰기 방법을 교육한다. 해운대구 4000명의 다문화가정을 위한 '독서 놀이터'도 지난달부터 운영에 들어갔다. 이들에게 독서와 연계한 한국어 교육을 시작했다.

또 해운대구 세계시민사회센터는 동네서점을 통해 독서 및 인문 동아리를 발굴하고 지원할 방침이다. 동네서점과 동아리를 일대일로 연결해 자율적 동아리 운영을 돕는 것이다. 이들 동아리는 문학 영화 음악 등 분야를 지정해 동네서점에서 작품 발표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그 대신 서점은 동아리에 책을 제공한다.

20년 전 전국적으로 5550개에 달하던 동네서점은 온라인·대형 서점의 등장으로 지난해 1600개까지 급감했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해운대 동네서점은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참고서와 잡지 일색의 책을 단순히 판매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골목의 문화 거점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해운대구 동네서점 살리기 운동본부 주유진 회장은 "문화행사를 통해 성과를 얻으면서 서점 주인 사이에 고무적인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다른 도시 사례를 통해 지역 특화 동네서점의 방향을 찾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