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님은 오직 청소년만 받고 밥값은 공짜라는데

- 꽉 닫힌 마음 무장해제 시키는 따뜻한 밥 한 그릇

밤이 깊어지면 부산의 대표 번화가인 서면 거리의 네온사인은 휘황찬란한 빛을 발한다. 술에 취한 행인들과 번화가의 분위기에 들뜬 젊은이들이 거리를 점령한다. 지난 4일 시끌시끌한 분위기의 서면 중심부를 조금 벗어나 부전도서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평소에 보지 못했던 파란 천막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서면 궁리마루 앞에 자리 잡은 파란 천막은 주변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 길 하나를 두고 마주 보는 서면의 화려한 밤과 달리 소박함이 묻어난다. 천막에 붙은 '청개구리맘밥'이라는 푯말 앞에서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메고 있는 여학생 두 명이 서성거린다. 천막 밖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 사이로 목소리가 들려온다. "뭐하노. 어서 들어온나."

학생들을 따라 조심스레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간이 테이블 3개, 10개 남짓의 의자. 밥 짓는 냄새에 훈기가 풍겨온다. 청소년 몇 명이 휴대전화를 만지며 낄낄거리고 있다. "여기서 뭐하느냐"는 물음에 아이들의 웃음이 터진다. "뭐하긴요! 공짜로 밥 먹잖아요!"

'청개구리맘밥'은 청소년 전용 무료 밥집이다. 지난 3월 말부터 매주 목요일 오후 8시30분이면 궁리마루 입구에 문을 연다. 매주 40여 명의 청소년이 이곳을 찾는다. '무료 밥집'이지만, 음식이 허술하지 않다. 주먹밥 컵라면 등 간단한 요깃거리부터 카레 쇠고깃국같이 품이 들어가는 음식도 만날 수 있다.

'청개구리맘밥'은 학생상담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는 안선희(여·50) 씨가 함께 활동하던 상담사들과 함께 만들었다. 서너 명이 고정적으로 안 씨와 동료들을 후원한다. 안 씨는 '부산 밥퍼' 등에서 운영하는 무료 밥집 등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다 '청소년 상담'이라는 분야에 '꽂혔다'. 다른 다수의 청소년처럼 안 씨도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면서 가출을 해본 경험이 있다. 그때 배고프고 쓸쓸했던 기억이 안 씨를 청소년 대상 봉사활동으로 이끌었다. 안 씨는 "하루 정도의 짧은 가출이었지만 배가 고팠다"며 "그런 경험이 '청개구리맘밥'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하필 '밥'을 통한 봉사를 하게 됐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들이 밥을 먹으면 숨겨둔 속내를 풀어놓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은 그 윗세대들보다 풍족한 청소년기를 보내지만, 마음속에는 공허함이 있다고 생각했다. 안 씨는 경남 진해의 한 교회에서 비슷한 방법으로 청소년 상담을 효과적으로 진행한 사례를 참고했다. 

아이들이 천막에서 밥을 먹기 시작하면, 안 씨는 조용히 그들 앞에 앉는다. 아이들이 배를 두드릴 때쯤이면 안 씨는 두 가지 설문지를 아이들에게 내놓는다. 밥값 대신 설문지는 꼭 작성해야 한다. '지금 느끼는 기분을 적어보세요' 등 간단한 설문지를 작성하면, 그 내용을 토대로 아이들과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고리타분한 설교가 아니다. 그저 세상 사는 이야기를 들어준다. 

'청개구리'라는 이름 속에 안 씨의 바람이 들어있다. 청개구리는 어른들 말을 안 듣는 아이를 상징하는 단어로 굳어진 지 오래다. 하지만, 안 씨의 생각은 다르다. "청개구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뿐인데, 어른들은 그걸 자신들의 틀에 맞춰버리고 멋대로 재단하죠. 옛날 이야깃속 청개구리도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가 없어 답답하지 않았을까요?" 

안 씨는 '들어준다'라는 행위에 큰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를 들어주니 아이들 마음이 서서히 열린다. 제빵사가 되고 싶은 꿈을 이야기하는 친구도 있었고, 가정불화에 관해 조언을 구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안 씨는 "아이들에게 '너희를 지켜주는 어른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며 "아이들에게도 인생을 결정하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전해주고 싶다"고 설명했다. 밤은 깊어간다. 하지만, '청개구리맘밥'의 이야기 소리는 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