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인구를 먹여 살리는 밀과 쌀이 상반되는 것은 어찌된 연유일까?

밀은 물이 적은 밭(田)에`서 자라지만 쌀은 물에 잠긴 논(畓)에서 자란다. 밀은 내건성(耐乾性)이라 강우량이 적은 곳에서 자라지만 쌀은 습식성(濕式性)이라 강우량이 많은 곳에서 자란다. 밀은 한대 지역에서도 자라지만 쌀은 온대 지역에서도 자란다. 밀은 제분해 가루로 빻아 먹지만 벼는 정미해 쌀알을 그대로 먹는다. 밀은 주로 서양의 주식이지만 쌀은 주로 동양의 주식이다. 밀은 껍질을 벗기기 힘들고 가루를 내기 쉽지만 쌀은 껍질을 벗기기 쉽고 가루를 내기 힘들다. 밀은 빵으로 구워 먹지만 쌀은 밥으로 쪄서 먹는다. 밀 농사는 일손이 덜 가기에 농부들끼리 느슨한 개인주의가 형성되지만 쌀 농사는 일손이 많이 들어가기에 농부들끼리 긴밀한 공동체 문화가 발달한다.

밀로 만든 빵은 고기나 우유랑 같이 먹기에 가축을 키우는 유목을 병행하지만 쌀로 만든 밥은 야채나 나물과 같이 먹기에 밭을 가꾸는 작물이 병행한다. 밀을 먹는 문화권에서는 주로 포크·나이프를 쓰지만 쌀을 먹는 문화권에서는 주로 숟가락·젓가락을 쓴다. 밀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길을 내지만 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마을을 이룬다. 밀은 느리게 자라기에 단일 일모작만 하지만 쌀은 빨리 자라기에 기후에 따라 이모작도 가능하며 같은 농지에서 보리 등 다른 농사도 할 수 있다.

마치 음과 양을 보는 듯하다. 마른 밭에서 키우는 밀이 양이라면 습한 논에서 키우는 쌀은 음이다. 음과 양에 우열은 없다. 음양의 조화로 동서와 남북이 서로 평화로우면 좋겠다.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