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살이 풀인 벼는 밀과 함께 온 지구인을 먹여 살리는 식물이다. 땅에 자연스럽게 자라던 볍씨 나락을 주워 먹다가 땅을 갈아(cultivate) 키워 먹던 농경생활로 전환하며 문화(culture)가 시작되었다. 농사지은 벼(禾)를 사이좋게 나누어 사람들 입(口)으로 먹던 조화로운(和) 모계사회는 부권사회로 변했다. 먹고 남을 잉여농산물이 생기자 이를 차지하던 주먹 센 남자들 때문이다. 이들 중 가장 우두머리 왕이 나타나며 사회계급이 생겼다. 4000여 년 전부터 상층부 권력에 의해 문명과 더불어 전쟁도 야기되었다. 결국 농작물에서 비롯되어 문화도 문명도 전쟁도 시작되었다.

볍씨 껍질을 벗겨 도정(搗精)한 쌀은 무슨 뜻을 지니고 있을까? 쌀알 하나를 눈여겨 살피면 태양 에너지인 햇살의 기운이 영글어 있는 것같다. 이 햇살에서 쌀이라는 낱말이 오지 않았을까? 옛말에 유독 쌀을 사는 게 파는 거고 파는 게 사는 거라 했는데 이는 쌀이 돈보다 귀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분명한 객관적 정설은 아니지만 희미한 주관적 추론을 하면 그런 짐작도 가능하다. 그런 햇살의 기운인 쌀을 먹고 우리 몸은 살을 이루며 살이 끌리는 살앙인 사랑을 나누고 사는 살암인 사람이 된다.

쌀을 물에 넣고 끓이면 밥이 된다. 구수한 풍미에 이 세상 모든 짠맛과 어울리는 밥을 누가 제일 먼저 발명하였을까? 밥이 정말 맛있어 그분께 제사 지내고 싶다는 지인의 말이 떠오른다. 밥을 먹고사는 우리는 밥보, 즉 바보다. 밥을 맛있게 먹는 바보답게 사는 게 사람의 원초적 즐거움이자 행복이다.

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