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래구가 마련한 남성 요리강습 '앞치마 두른 남자의 행복 요리교실' 가 지난 7일 오후 동래구 온천동 한 요리학원에서 열리고 있다.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 요즘 부쩍 는 요리학원·교실엔
- 퇴직하고, 회사 마치고 온
- 50·60대 수강생'분'들의
- 칼질하는 모습 흔해져

- 동래 '앞치마 두른 남자'
- 사하 '오늘 밥은 내가 할게'서
- 이들이 요리를 배우는 이유
- 아빠, 남편, 애인으로
- 사랑받고 싶기 때문이란다

앞치마를 두른 남편, 자녀와 함께 놀아주는 아빠를 일등으로 치는 시대다. 아내와 아들딸에게 '사랑받고 싶은' 남자를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경쟁적으로 지원에 나서고 있다.

지난 7일 오후 7시 부산 동래구 온천동 한 요리학원. 고동색 앞치마를 정갈하게 두른 남성 28명이 조리대 앞에 섰다. 동래구가 마련한 '앞치마 두른 남자의 행복 요리교실' 수강생들이다. 평균 나이 54세. 60대 이상도 10명이나 된다. 이날 요리 주제는 '매콤한 홍합찜'. 간 해독과 관절염, 고혈압에 좋다고 알려진 홍합에 미나리, 양파, 콩나물 등 채소를 함께 볶아내는 요리다.

강사로 나선 서순애 원장이 물었다. "칼을 처음 잡아보시는 분 있나요? 손 한 번 들어볼까요?" 다들 알 수 없는 웃음만 지을 뿐, 손드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실습이 시작되자 제 실력이 금방 들통 났다.

박상태(66·동래구 명륜동) 씨와 조용규(56·금정구 부곡동) 씨는 둘 다 요리가 처음이다. 박 씨는 "직장생활이 바빠 결혼 40년간 요리를 해본 적이 없다"며 "퇴직을 하고 나니 아내 부담을 좀 덜어주고 싶은 마음에 요리강습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도마에 오징어를 올려놓고 조심조심 껍질을 벗기던 조 씨도 "나도 요리는 처음 해본다"고 멋쩍은 듯 웃었다.

둘은 레시피를 조리대에 올려 두고 수시로 확인했다. 책자에 적힌 순서를 그대로 따른다고 했지만 생각처럼 쉽진 않다. 볶음용 양념장을 만들 때는 통깨를 찾지 못해 들깨를 대신 넣고, 홍합 수염을 떼지 않은 채 불 위에 올렸다가 뒤늦게 알아채기도 했다. 과정은 어설펐지만 내놓은 결과물은 그럴듯했다. 각종 채소가 제대로 어우러진 홍합찜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랐다.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한 술씩 떴다.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 서로 "식당에서 사 먹는 거랑 똑같다", "처음치고 훌륭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뒤편 조리대에 선 박순경(63·동래구 온천3동) 씨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요리강습을 신청했다. 이제 콩나물국, 미역국쯤은 자신 있게 끓여낸다. 박 씨는 요리를 배우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로 아내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꼽았다. 식사 때면 아내를 거들어 요리를 하고, 장도 같이 본다. 박 씨는 "맞벌이를 해 부부가 얼굴을 마주할 시간은 저녁뿐이라 요리하고 밥 먹는 시간이 정말 소중하다"며 "요리는 생활의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고 밝게 웃었다.

공이철(34·동래구 낙민동) 씨는 직장을 마치고 곧장 요리학원을 찾았다. 젊은 세대답게 요리에 관심이 많지만 직장생활을 하며 배울 기회는 흔치 않다. 이번 강습은 일주일에 한 번, 늦은 시간에 잡혀 있어 부담이 적다. 공 씨는 "옛날에는 음식을 여자가 해야 한다고 여겼지만 이제 가사와 양육 분담이 필수인 시대"라며 "외식도 좋지만 아내와 직접 요리를 해먹는 즐거움도 크다"고 말했다.

서 원장은 "남성들에게 요리를 배우는 이유를 물으면 '사랑받기 위해 왔다'는 대답을 많이 한다"며 "남자가 요리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분위기도 시대 흐름인 것 같다"고 전했다.

이처럼 가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려는 남자들이 늘면서 지자체들도 맞춤형 프로그램을 속속 개설하는 추세다. 사하구는 지난 3월부터 '오늘 밥은 내가 할게' 강좌를 열고 남성들을 대상으로 요리수업을 하고 있다. 직장 퇴근시간을 고려해 수업은 매주 화요일 오후 7시부터 시작한다. 육아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만든 곳도 있다. 해운대구는 지난 7일부터 오는 7월까지 해운대 거주 예비부부, 신혼부부, 유아 부모 등 100명을 대상으로 '좋은 부모 자격증반'을 운영한다. 부모의 의미를 깨우치고 아이와 교감하는 법 등을 10회에 걸쳐 강의한다. 전 과정을 이수하면 '좋은 부모 수료증'도 받을 수 있다.

동래구 관계자는 "그동안 남성들은 지자체 평생학습 교육의 소외계층이었지만 최근에는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 며 "요리 등 남성들의 참여 기회를 확대하는 프로그램의 인기는 앞으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