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권익위원회와 국방부 직원이 28일 미군철도 현장조사를 벌이고 있다. 백한기 선임기자

- 땅주인 K산업 권익위 민원
- "보수해도 못 써" 철거키로

40여 년간 시민 사유지를 점유하고 도심을 단절하던 미군 철도가 철거된다.

국민권익위원회와 국방시설본부 한국철도공사 한국철도시설공단은 28일 부산해양수산청에서 현장 조정회의를 열고 부산 동구 범일동 K산업 부지를 가로지르는 미군 철도를 걷어내는 데 합의했다. 권익위의 이번 조정은 시민 재산권 보호를 위해 주한미군 군사시설물을 철거하는 최초의 사례다.

이 철도는 1967년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발효에 따라 주한미군의 각종 군수작전 지원 용도로 설치됐다. K산업은 철도가 생기기 이전부터 이곳에서 창고업을 운영했지만, SOFA 탓에 어쩔 수 없이 철길을 내줬다. 이때부터 K산업은 회사 땅을 통과하는 철도 때문에 경영에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주한미군은 최근 10년간 안전상의 이유로 이 철도를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폐선에는 반대했다. 철도공사가 전국 폐철도 현황 조사에 나서자, 미군은 "철도를 보수해 계속 사용하겠다"며 버텼다. 이에 참다못한 K산업 측은 지난해 11월 권익위에 고충 민원을 제기했다.

권익위가 수차례 현장을 찾아 조사하는 과정에서 상황은 달라졌다. K산업 부지의 철도는 아무리 보수해도 주한미군이 필요로 하는 화물열차(3축)의 운행이 어렵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권익위는 이 같은 결과를 토대로 해당 철도를 철거하고, 대신 기존 6부두 전용철도를 미군이 이용하도록 조정안을 냈다. 권익위는 또 국방시설본부가 철도 철거와 대체 업무를 추진하고, 부산해수청은 6부두 전용철도를 대체 철도로 선정하는 일을 지원하도록 유도했다. 이와 함께 철도공사와 철도시설공단에는 철도 철거와 대체 철도 이용을 위한 안전성·타당성 점검을 비롯해 철도건널목 사용, 군수물자 상·하차 등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겼다.

권익위의 방침에 국방시설본부 등이 뜻을 같이하면서 이번 조정은 관계기관 협업을 통해 미군시설을 철거한 '첫 사건'으로 기록됐다. 또 국방부가 그동안 현 철도시설 유지를 위해 지급해온 사용료·수리비·토지매입비 등 200억 원가량의 국가 예산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권익위 김인수 부위원장은 "이번 사례를 근거로 전국에 흩어진 군 시설물을 조사할 방침"이라며 "국민의 재산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중재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