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서울역쪽방상담소 앞에서 쪽방촌 주민들이 무료 결핵검진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 약제 내성가진 환자 전국 최다
- 아직 뚜렷한 원인 규명도 못해

- 결핵 예방·검진 등 예산 늘리고
- 보건소 전문 인력 증원 급선무
- 치료기술 연구 투자도 확대
- 발병률 '0' 마스터플랜 수립을

부산이 '결핵도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는 부실한 공공의료 시스템이다. 보건소 인력은 전국 7대 특별·광역시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다. 보건당국은 부산이 결핵 발생률뿐 아니라 한 개 이상의 약제에 내성을 가진 다제내성 결핵 환자 부문 1위인데도 원인을 규명 못하고 있다.

양산부산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장철훈 교수는 "부산의 결핵 발생률이 높은 것은 감염원 관리가 부실해 감염률이 높기 때문"이라면서 ▷고위험군을 중심으로 한 감염률 조사 확대 ▷연도별 결핵 발생률 감소 목표 설정과 사업 우선순위를 담은 부산시 차원의 종합계획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공공 보건인프라 강화해야

5개월 전 부산의료원을 찾은 노숙인 이모(48) 씨는 광범위한 결핵과 좌측 결핵성 늑막염 진단을 받았다. 의료진 몰래 병원을 나간 그는 현재 연락이 끊긴 상태다. 공사장에서 떨어져 병원을 찾은 김모(44) 씨도 늑골 골절과 함께 활동성 결핵 진단을 받았다. 보름 동안 입원 치료를 받고 퇴원한 그는 결핵약 복용을 중단했다. 4개월 전 심한 호흡곤란으로 다시 병원을 찾은 그는 증세가 악화돼 지금까지 치료를 받고 있다.

부산의료원 호흡기내과 배현혜 과장은 "일반 환자는 퇴원해도 결핵전담 간호사가 꾸준히 연락해 상태를 관찰한다. 보호자를 통해 약물 복용을 중단하지 않도록 종용하고 결핵전문병원 입원도 권유한다. 반면 주거가 일정치 않은 노숙인이나 보호자가 없는 환자는 사후 관리가 어려워 자칫 다제내성 결핵으로 발전하기 쉽다"고 말했다. 온종합병원 이승훈 호흡기내과 과장은 "취약계층은 결핵 유병률이 높고 증세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에서 의료기관을 찾는 경우가 많다. 이들에 대한 정기검진을 시행하면 결핵을 조기에 발견해 전염성을 낮출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시는 지난 9일부터 노숙인과 쪽방촌 주민을 대상으로 결핵 무료 검진에 나섰다. 쪽방촌이 밀집한 용산구 동자동을 시작으로 5개 쪽방상담소와 노숙인이 많은 서울역·영등포역에서 2600여 명을 검진할 계획이다. 현장검진에는 결핵전문병원인 서북병원과 보건소 의료 인력 20여 명이 투입된다.

부산시도 올해 처음으로 취약계층 검진비 2억4800만 원을 책정했다. 중학교 1학년만 시행하던 흉부 X선 검사도 2·3학년까지 확대했다. 전체 결핵관리 예산은 지난해보다 8억원가량 늘어난 28억4000만 원. 그러나 '결핵도시' 오명을 벗기에는 미흡한 수준이다. 외국인 근로자 결핵 건강검진 예산은 3000만 원으로 6년째 제자리걸음이다. 부산복지개발원은 최근 발간한 '제6기 부산시 지역의료보건계획(2015~2018년)'에서 "지난해 부산시 보건·복지 예산 2조2738억 원 중 시민보건과 건강검진 예산은 3.8%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공공의료의 중심인 보건소 기능 확대도 주문한다. 부산 16개 구·군의 보건소 평균 인력은 36.6명(2013년 기준)으로 7대 도시 평균 64.8명의 56.4% 수준에 불과하다. 보건소 인력 한 명이 책임지는 인구는 부산이 6030명으로 특별·광역시 4842명에 비해 1200명가량 많다. 보건소 인력 중 비정규직 비중은 54%로 절반을 넘었다.

취약계층이 많이 이용하는 사회복지시설 역시 적다. 부산은 인구 10만 명당 7.32개로 전국 평균(13.02개)의 56% 수준이다. 부산보다 적은 대도시는 울산(5.06개)과 서울(6.95개)뿐이다.

■취약계층 감염률조사 서둘러야

젊은 층도 결핵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2013년 부산 신결핵 환자 2771명 가운데 20대(13.5%)와 30대(12.6%) 비율은 60대(15.9%)보다 약간 낮은 수준이다. 장기적인 결핵 퇴치 전략이 수립돼야 하는 이유다. 국립마산병원 흉부외과 황수희 과장은 "2030세대 결핵 발병률이 높은 것은 전염원 관리가 안되고 있다는 증거다. 몸속의 잠복 결핵균이 면역력 저하와 함께 결핵으로 발병하는 노인 결핵과는 다르다"고 지적했다. 또 "결핵 발생률을 낮추려면 잠복결핵의 조기 발견이 가장 중요하다. 결핵환자 가족들이 모두 검진을 받을 수 있는 제도부터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개인별 '맞춤형 결핵 치료법'을 연구 중인 인제대 신재국 약물유전체연구센터장은 "우리나라는 다제내성 결핵 치료기술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다. 정부 정책과는 별도로 결핵 발생률이 높은 부산시가 결핵 퇴치 연구에 관심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보통 결핵처방은 4가지 이상의 약제를 복합처방하는데 약물이 상호 작용하면서 부작용이 나타나거나 약제의 효능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철훈 교수는 "부산은 정부 정책만 따라가는 수준으로 다소 소극적이다. 우선 감염률 조사를 제안한다.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하여 재정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차츰 범위를 넓혀가면서 감염률을 조사해 보면 전국 평균 혹은 다른 시·도에 비해 실제로 감염률이 높은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부산복지개발원 박주홍 부연구위원은 "부산시 건강지표는 전국 평균을 밑돈다. 상대적으로 높은 사망률, 결핵발생률, 당뇨병 치료와 합병증 검사 등에 대한 종합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지역사회의 총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결핵전문 국립마산병원 신축 지연…발목 잡힌 퇴치사업

- 주민 반발로 두달넘게 착공 표류
- 89억 투자 예방백신 생산시설도 균주 확보 못해 가동 않고 방치

신축을 위해 지난해 12월 철거된 뒤 방치되고 있는 국립마산병원 본관 부지. 김화영 기자

정부는 우리나라가 결핵 발병·사망률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1위라는 불명예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도했다. 2010년 결핵예방법 11차 개정을 통해 전염성이 강한 다제내성 환자의 '강제 입원명령'의 근거를 마련했다. 결핵 발생률을 2020년까지 인구 10만 명당 50명 수준으로 낮추는 '제1기 국가 결핵관리 종합계획(2013~2017년)'도 내놨다. 그러나 결핵 퇴치의 핵심인 국립마산병원 현대화와 결핵 예방백신(BCG) 국산화는 발목이 잡힌 상태다.

경남 창원시 가포동 국립마산병원은 국립목포병원·서울시립서북병원과 함께 국내 3대 결핵전문병원이다. 연간 6000명 이상을 치료한다. 보건복지부는 2016년까지 음압시설(압력 차를 이용해 병실 공기를 정화해 밖으로 배출하는 장치)을 갖춘 354병상 규모의 새 병원 건물을 짓기 위해 495억 원의 민간투자를 유치했다. 지난해 12월에는 본관 건물을 철거했다.

문제는 가포동 주민들의 반발. 김수하 주민대책위원장은 "결핵전문병원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동네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본관과 별관 사이에 있는 2차로(신마산~가포동) 역시 병원 때문에 확장이 어렵다. 정부가 마을 발전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착공이 두 달 이상 지연되면서 진료 차질이 우려된다. 음성 결핵 환자들이 지난해 말부터 별관으로 옮겨 양성 환자와 함께 치료받고 있어 교차 감염 우려도 커진 상황이다.

정부가 BCG 국산화를 위해 2006~2011년 89억 원을 투자한 생산시설(녹십자 화순 백신공장)도 가동을 못하고 있다. 현재까지 백신 생산을 위한 균주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균주 확보를 위해 2009년 체결한 덴마크 SSI사와 업무협약은 아무런 성과없이 2011년 말 끝났다.

질병관리본부는 결핵연구원을 통해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균주를 받아 BCG-코리아라는 균종을 개발했지만 백신 생산용으로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으면서 국산화에 제동이 걸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