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이다. 매년 전국 곳곳에서 만세운동을 재현하며 그날의 의미를 되새겼다. 올해는 특별히 부산 최초의 3.1운동이 시작된 곳인 부산진일신여학교(현 동래여고 전신) 주변에서 벌어진 만세운동 재연극이 눈길을 끌었다.

지난달 27일 오전 부산 동구 도시철도 1호선 좌천역 1번 출구 앞. 흰색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은 현대판 '유관순' 여고생 4명이 등장했다. "여러분,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쳐주세요." 태극기를 손에 든 군중들은 만세삼창을 외쳤다. 그 순간, 일본 순사 2명이 나타나 여고생들을 바닥으로 밀쳤다. "배은망덕한 조센징같으니…끌고가서 처단해." 순사는 여고생의 머리채를 잡아 끌고 사라졌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이날 부산 동구와 동구 문화원 주최로 열린 '일신, 독립을 외치다' 행사 중 하나인 재연극이 진행됐다. 동구청 광장부터 좌천동 부산진일신여학교까지 '독립의 길'을 따라 300여 명이 행진했다.

1919년 3월 11일 역사적인 그날 수업을 마친 부산진일신여학교 학생과 교사들은 오후 9시 준비한 태극기를 손에 들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기숙사를 나와 좌천동 일대에서 시위를 벌였다. 당시 시위를 주도한 학생과 교사들은 각각 6개월과 1년 6개월간의 옥고를 치렀다.

일신여학교는 총 2층 규모. 건물 정면의 계단과 계단 2층의 난간은 20세기 초 서양식 건물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다. 내부에는 당시 교실, 태극기, 선교사들의 물건 등을 전시해 놓았다. 2층으로 올라가니 3.1운동과 관련한 소장품이 전시돼 있다. 여기서 일신여학교 3·1만세운동의 주역인 故 김반수 애국지사의 편지가 눈에 띈다. 1993년 작성된 편지이며 총 3장 분량이다.

다음은 편지의 내용을 재구성했다. "보통학교 1학년인 7살 때 일입니다. 아침 조례 때 일장기가 게양되는 것을 보고 상급생 언니들이 땅을 치며 통곡했습니다. 저는 어려서 무엇 때문에 저런 일을 할까 의아했습니다.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신여학교에 진학했습니다. 나라없는 서러움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고통을 겪었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나 하나쯤이 아니라 나 하나라도'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갔습니다. 때마침 1919년 3월 1일 독립만세를 전국에서 부른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때는 이때다 싶었죠. 일신여학교 동지 몇 명이 모여 태극기를 만들어 나눠주기로 약속했답니다. 어머님께서 저를 출가시킬 때 쓰려고 장만해둔 혼수감 옥양목을 어머님 몰래 끄집어내 기숙사로 가지고 왔습니다. 초저녁에는 기숙사 벽장 속에 숨어 있었습니다. 밤 10시가 넘어 작전을 개시했습니다. 불빛이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불로 창문을 가렸습니다. 옥양목에다 대접을 엎어서 동그라미를 그렸습니다. 붉은물, 검은물을 칠해 태극기를 겨우 마련했습니다. 3월 11일 밤 8시께 거리로 갖고 나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나눠줬습니다. 목이 터지라고 대한 독립 만세를 불렀습니다. 부르다 부르다 지쳐 쓰러지면 또 용기를 내서 불렀답니다. 결국 일본 경찰에게 잡히고 말았지요. 그때는 여자로서 부끄럽다거나 무섭다기보다는 우리나라를 되찾아야겠다는 일념 때문에 일본 경찰에게 수모를 당해가면서도 항의를 했습니다. 결과는 옥살이었지요. 지금 그때의 일을 생각하니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였지만 그런 일을 해냈다는 것을 생각하니 너무 대견스럽고 가슴이 뿌듯합니다.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나라없는 서러움이란 정말 뼈를 깍아내는 아픔보다 더 견디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어서 빨리 통일이 되어 온 국민(남북한)이 다함께 잘 살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게 저의 소망이고 희망입니다."

김반수 애국지사는 2001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7세. 동래 출신인 김반수 지사는 일신여학교 학생시절 태극기 100여개를 만드는 등 만세운동을 주도했다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에는 대구 효성보통학교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시켰다. 공로를 인정받아 1992년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부산시는 제96주년 '3·1절'을 맞아 이날 오후 2시부터 남포동 광복로에서 3.1절 정신을 기리고 태극기 게양 분위기를 고취하기 위한 '톡톡부산 V-데이' 봉사캠페인을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