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문을 닫은 합천 백산초등학교. 운동장에 잡초가 무성하다. 이완용 기자

- 문 닫은 시골학교 대부분
- 흉물 전락 수년넘게 방치
- 부동산 투기 수단 악용도

- 잡초밭으로 묵혀두기보단
- 리모델링 후 주민에 환원
- '문화 힐링캠프'로 활용을

초등학교. 유년시절 추억의 가장 큰 저장고이다. 거기서 겪은 일은 아무리 사소하고, 때론 불쾌한 것일지라도 평생을 간다. 세월에 곱게 걸러진 마르지 않는 마음 자산으로. 그런 '추억 발전소'들이 폐허로 버려져 먼지가 쌓여가고 있다. 아예 개인에게 소유권이 넘어가 축재 수단으로 전락한 곳도 있다.

1998년 폐교된 남해 가천초등학교 교실. 유리창이 깨진 채 먼지가 쌓여있다.

계단식 천수답 '다랭이논'으로 유명한 경남 남해군 가천면 가천초등학교가 한 예다. 1998년 폐교된 이 학교의 5000여 ㎡ 부지와 7칸 교실의 건물은 2000년 8월 부산의 예술인 A 씨에게 1억2000여만 원에 팔렸다. 환란 후유증이 극심했던 당시 경남교육청이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폐교를 공매한 것이다. A 씨는 폐교를 매입하면서 교육청에 박물관을 짓겠다고 했다. 13일 주민들은 "마을에 연고가 있는 A 씨가 박물관을 짓는다면 폐교도 살리고 마을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 매각에 선뜻 동의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A 씨는 폐교를 산 지 1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대로 방치해놓고 있다. 출입문과 유리창이 다 부서지고, 나무 복도가 썩어 내려앉은 교사와 운동장에는 쓰레기만 나뒹굴고 있다. 폐교를 매각한 지 5년 뒤 다랭이마을이 명승지로 지정돼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폐교 땅값도 치솟았다. 그래서 마을에는 "박물관 건립이 아니라 부동산 투기 목적으로 폐교를 사들인 게 아니냐"는 불신 어린 얘기가 나돌고 있다.

주민들은 폐교를 쉼터와 체험시설, 문화공연이 가능한 공간으로 리모델링해 활용하길 바란다. 매년 늘어나는 다랭이마을 관광객을 수용할 곳이 부족해서다. 주민들은 교육청에 'A 씨에게 계획대로 개발할 것을 독촉해달라'는 건의도 했다. 그러나 교육청은 "A 씨가 지금은 형편이 어려워 미루고 있지만 조만간 개발할 예정이라고 했다"고만 전할 뿐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손명주 다랭이마을 이장은 "폐교가 주민과 관광객을 위한 체험·문화공간으로 재활용되면 좋을텐데 안타깝다"면서 "이대로 계속 방치할 게 아니라 지자체가 폐교를 다시 사들여 재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합천군 용주면 백산초등학교. 1999년 문을 닫은 이 학교도 6500여 ㎡ 부지와 교사가 황폐한 상태다. 교실 유리창은 모두 깨진 채 창틀만 남았고 운동장에는 잡초가 무성하다. 최근 교육청이 공매를 위해 공청회를 열었으나 주민들의 반대여론이 거세 매각 대신 임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주민들은 폐교를 마을에 환원할 것을 주장한다. "주민들이 부지를 기부해 학교를 세웠다"는 이유에서다. 평상시에는 노인 게이트볼장 등 체력단련시설로, 명절이나 여름 휴가철에는 각종 행사장으로 활용하는 게 주민들의 구상이다. 1985년 이 학교를 졸업한 나상정(43) 씨는 "어릴 때 뛰놀던 초등학교가 흉물로 변한 것을 보면 가슴이 아린다"며 "폐교를 주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재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천시 곤명면 곤명초등학교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폐교된 지 3년밖에 안 지났지만 시설관리가 안 되고 있는 탓인지 8300여 ㎡의 부지와 2층 교사가 빠르게 낡아가고 있다. 교육청은 "주민 여론을 수렴한 결과, 문화공간으로 재활용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매각도 임대도 못하고 있다"면서 "어떤 방식이든 재활용 방안이 정해지면 긍정적인 검토를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학교는 인근 은사·봉계초등학교와 통폐합하면서 동창회 등 인적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의견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 이재석 은사마을 이장은 "곤명초등학교는 일제 때 야학이 개설됐을 정도로 유서 깊은 곳"이라며 "다솔축제 등 크고 작은 주민행사를 치르는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