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새벽 3시께 부산 남구의 한 주차장에 40대 남성이 나타났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이 남성은 손전등으로 차량 내부를 살폈다. 다시 1분 정도 주위를 살피더니 이내 윗옷 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뒷문 유리창의 고무패킹 주변을 찌르기 시작했다. 1초, 2초, 이 남성이 뒷자리에 있던 책가방 하나를 꺼내 메고 유유히 사라지는 데는 10초면 충분했다.

그가 윗옷 안에서 꺼낸 것은 길이 30㎝가량의 일자 드라이버. 이 남성은 이날 남구와 수영구 일대를 돌며 일자 드라이버로 차량 유리창을 교묘히 뜯어내는 수법으로 차량 15대를 털었다. 그가 턴 차량 중에는 고가의 수입차와 고급승용차도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대의 차량에서도 경보음이 울리지 않았다. 그가 둔기로 유리를 깨거나 문을 열지 않았기 때문이다. 첨단 도난 방지 시스템을 갖춘 최신 고급차가 일자 드라이버에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이 남성의 범행은 경찰의 끈질긴 수사로 덜미가 잡혔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곧바로 전담반을 구성해 이 남성을 쫓기 시작했다. 범행현장 주변 방범·업소용 CC(폐쇄회로)TV와 시내버스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해 용의자로 보이는 남성이 담긴 동영상 30개를 찾았다. 이를 동일수법 전과자 9000명과 대조해 유력 용의자 2명을 확보했다.

전담반은 매일 새벽 2시~오전 6시까지 잠복 수사를 벌여 지난 28일 오후 7시께 동구 범일동의 한 여인숙에서 이 남성을 붙잡았다.

경찰 조사 결과, 이 남성은 동종전과 21범의 차량털이 상습범인 김모(43) 씨로 드러났다. 김 씨는 지난해 3월 같은 혐의로 청송교도소에서 1년 6개월을 복역하고 출소한 뒤 다시 범행을 저질렀다. 김 씨는 지난해 6월부터 차량 80여 대의 유리를 뜯어낸 뒤, 안에 있는 현금 상품권 가방 등 1200만 원 상당을 훔친 것으로 조사됐다.

부산 남부경찰서는 29일 승용차 유리를 뜯어내는 수법으로 상습적으로 금품을 훔친 혐의(상습절도)로 김 씨를 구속하고 여죄를 수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