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부산 부산진구 개금3동 '기찻길 마을' 주민들이 '제1회 빅 이벤트' 펼침막 앞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홍영현 기자 hongyh@kookje.co.kr

부산 부산진구 개금3동 8·9·10통은 '기찻길 마을'로 불린다. 마을 바로 옆에 철길이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 기차가 오간다. 빌딩 숲 속에 둘러싸여 찾기 어렵다. 도심 속 외딴 섬이었다.

바깥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했지만, 기찻길 마을은 시간도 느리게 흘렀다. 아직 슬레이트 지붕 집이 여럿 남아 있다. 단층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주민은 대부분 70, 80대다. "주민 모두 30년 이상 이곳에 살았지. 오래된 전깃줄이 거미줄처럼 지붕 위로 얽혀 집집이 합선이 자주 됐어." 14일 만난 터줏대감 임치동(79) 할아버지의 설명이다.

이런 기찻길 마을에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마을공동체로 거듭나고 있다. 주민들은 "우리가 가진 건 없어도 마음은 여유 있다"며 동네를 자랑했다. 배경에는 부산시 사회공헌정보센터(기업 복지넷), 동의대, 복지법인 우리마을이 있다. 세 단체가 주민과 함께 힘을 뭉치자 마을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세 단체는 가장 먼저 마을 만들기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봤다. '철저히 마을 주민 중심으로 가자'. 세 단체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복지법인 우리마을 박민성 사무처장은 "그간 공공과 민간이 복지 사각지대를 중심으로 많은 활동을 펼쳤지만,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주민이 아닌 외부가 주체가 되고 짧은 기간 사업을 했기 때문"이라며 "마을 주민의 진정한 생각과 욕구를 찾아내고 반영하는 사회공헌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부산시 사회공헌정보센터 관계자는 "그동안 각 단체의 사회공헌 활동은 김장하기, 연탄 나르기 등에 인원을 동원하는 식이었다. 기찻길 마을에서는 전혀 다르다. 주민 의견에서 출발해 주민이 직접 결정하는 등 마을-기업-대학의 새로운 사회공헌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주기적으로 마을 주민을 만났다. 마을 주민과 기업·대학 사이에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일은 주로 복지법인 우리마을이 맡았다. 주민이 바라는 사항을 중점적으로 수렴했다. 정숙이 8통장은 "통장끼리도 자주 만나 마을 주민이 진짜로 아쉬워하는 사항을 점검했다"고 말했다. 낡은 전기설비 수리사업은 그 사례다. 지난 1월 한국전력 부산울산본부, 전기공사협회, 우리마을은 공동으로 기찻길 마을의 낡은 전기설비를 고쳤다. 김귀성(83) 할머니는 "이제 전깃불을 안심하고 쓸 수 있다. 가려운 곳을 긁어줘 고맙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며 10개월이 흘렀다. 그간의 성과를 한데 모아 주민들은 15일 기찻길 마을 일대에서 '제1회 빅 이벤트'라는 마을 잔치를 연다. 기업의 사회공헌활동, 자원봉사자, 마을 주민 등 1000명 이상이 모여 주민의 욕구를 해결하는 사회공헌 활동의 장이다.

철저히 주민 중심이다. 처음 계획했던 영화감상도 뺐다. 주민 반응이 시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가족사진, 단열시공, 빈집과 쓰레기 정리, 벽면 페인트칠, 노래자랑, 건강진단, 국수 나눔 등 꼭 필요한 행사로 채웠다. 우리마을 대표인 동의대 유동철(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제1회 빅 이벤트를 계기로 주민을 주인으로 세우는 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 대상을 확산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