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종일관 상업적 이용에 초점

- 행사 연 의원들은 먼저 자리 떠

- 토론자 "개발 밀어붙이는 인상"

- 내달 논의 시작 시민계획단도

- 이해 얽힌 주민 13명 포함 '논란'

동해남부선 옛 철길(폐선부지) 활용 방안을 놓고 시민 의견을 들어보는 첫 토론회가 상업적 개발을 위한 구색 갖추기용으로 변질했다. 개발에 찬성하는 지역 주민이 대거 토론회에 참석했다. 토론회에서 주제발표자나 토론자가 시종일관 상업 개발을 말할 때는 박수가 쏟아졌고,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고성에 제지당했다. 주최 측이 상업 개발을 염두에 두고 정해진 절차를 밟는 모습이었다. 토론회는 예정된 시간보다 40분이나 일찍 끝나 이 같은 시선에 힘을 실었다.

■ 상업 개발 목소리에 '환호'

29일 오후 부산시의회 2층 대회의실에서 '동해남부선 폐선부지 활용 시민토론회'가 열렸다. 부산시와 하태경·배덕광 국회의원, 한국철도시설공단이 공동 주최한 이날 토론회는 300여 명의 시민이 참석할 정도로 높은 관심 속에 열렸다. 수십 명의 시민은 자리가 없어 서 있어야 할 정도였다. 주최 측이 마련한 토론회 자료집은 행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동났다. 

이날 토론회는 전문가의 주제 발표와 토론회, 질의응답 순으로 진행됐다. 일부 전문가는 토론의 주제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코카콜라 행사와 소리 나는 쓰레기통, 네덜란드 감자튀김 등을 콘텐츠로 제시해 참가자로부터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일부 청중은 주제 발표자가 상업 개발 논리를 설명할 때 크게 환호성을 지르거나 손뼉을 쳤다. 대회의실 한쪽에서는 '개발만이 살길이다' '부산시는 개발하라' 등이 적힌 천을 들고 나와 주최 측을 압박하는 시위도 펼쳐졌다.

주제 발표와 토론자로 나선 경성대 강동진(도시공학과) 교수는 "동해남부선 옛 철길을 그대로 두자는 말이 아니다. 소중하고 특별한 땅이므로 서둘러 개발할 게 아니라 충분한 시간을 두고 시민의 아이디어를 모아가자"고 전제한 뒤 "주민은 상업 개발에 대해 자신에게 이득이 돌아오는 재개발로 착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토론회가 끝난 후 "부산시와 철도시설공단이 상업 개발을 목표로 밀어붙이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이렇게 서둘러 개발하면 결국, 개발을 추진하는 특정세력만 그 열매를 따 먹을 것이다"고 경계했다.

■ "부산시가 폐선부지 매입을"

상업 개발을 막기 위해 부산시가 아예 철도 부지를 매입하라는 주장도 나왔다. 해운대시민포럼 조용우 운영위원장은 "서병수 부산시장이 공약한 대로 동해남부선 옛 철길이 시민 품으로 돌아가려면 시민공원 부지를 국비 지원으로 매입한 것처럼 시가 땅을 사야 한다"며 "적자에 허덕이는 철도시설공단에 맡겨서는 상업 개발을 막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시와 철도시설공단이 주민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고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부산 해운대구 송정1동에 산다고 밝힌 한 시민은 "동해남부선 탓에 80년간 고통을 받은 주민을 제쳐놓고 시와 철도시설공단이 누구로부터 의견을 수렴했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이번 토론회에 참석한 안경률 전 국회의원 역시 "시와 공단이 주민 의견 수렴에 소홀한 것 같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한편 이번 토론회를 공동 주최한 두 국회의원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지 않아 참석자들의 원성을 샀다. 

한 주민은 "토론회를 주최한 국회의원이 먼저 자리를 뜨면 어떡하나. 주민 목소리를 들으려는 의지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배덕광 국회의원은 토론회가 시작되자 곧장 밖으로 나갔고, 하태경 의원은 토론회 중간 바쁜 일정을 이유로 일어섰다.

■ 다음 달 상업 개발 주관사 선정

부산시가 구색 갖추기 여론 수렴을 하고 있다는 지적은 앞으로의 일정과 계획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시는 다음 달부터 시민계획단이 참여하는 라운드 테이블을 가동할 예정이다. 하지만 37명의 위원 가운데 13명이 이해관계가 있는 해당 지역 주민으로 구성돼 제대로 된 논의의 틀이 마련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민단체도 이 같은 문제점을 지적했다. 

부산환경운동연합 최수영 사무처장은 "상업 개발이 아닌 제대로 된 활용 방안을 주장하는 이는 10명도 채 되지 않는다. 이래서는 정상적인 토론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철도시설공단은 다음 달 미포~송정 구간 상업 개발을 담당할 사업주관사를 선정할 계획이다. 

시는 내년 6월에는 해운대 우동~옛 송정역 폐선구간에 공원을 조성하는 그린레일웨이 사업의 실시설계를 마무리할 예정이고, 이후 단계별 개발에 들어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