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년간 2만 건, 123억 달해
- 본인 증명해야 해지 가능
보이스 피싱으로 유출된 개인정보가 휴대전화 개통 등 2차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명의를 도용 당한 쪽이 사기 피해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탓에 피해 구제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신용카드처럼 휴대전화 단말기 전달 시에도 본인 확인을 거치도록 하는 등 명의 도용 피해 방지와 피해 구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염모(58) 씨는 최근 자신도 모르게 휴대전화 3대가 개통돼 단말기 대금, 통신요금, 소액결제 등 500만 원 상당의 피해를 봤다. 사업자금이 급했던 염 씨가 지난 8월 대출 알선 보이스 피싱에 속은 게 화근이었다. 보이스 피싱 조직은 본인 확인을 내세워 신분증 사본을 요구한 뒤 대출금을 보내주겠다며 통장 사본까지 요구했다. 이어 금방 대출이 될 것처럼 애를 태우더니 문제가 생겼다며 신용카드 정보가 필요하다고 염 씨를 속여 개인정보를 빼갔다.
염 씨가 명의 도용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 달 뒤. 이동통신사를 찾아갔으나, 단말기 대금과 통신요금, 소액결제 대금 등을 내지 않으면 해지도 안 된다는 말만 들었다. 그는 자신의 명의 도용 피해 사실을 밝혔지만, 이통사는 그 사실을 염 씨가 직접 입증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통사 관계자는 "염 씨 명의의 신용카드로 본인 인증이 됐는데, 이를 위해선 비밀번호도 필요하다"며 "우리로선 개통 과정에서 본인 확인을 위한 충분한 절차를 거쳤으므로, 개통 당시 본인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고객이 직접 입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통 과정에서 제출된 염 씨의 신분증 사본은 보이스 피싱 범인이 증명사진을 뒤바꾼 신분증에 의한 것이었지만, 이통사는 이를 염 씨가 직접 휴대전화를 개통하지 않았다는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염 씨는 경찰이 범인을 붙잡아 재판에 넘긴 뒤 유죄판결을 받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12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권은희 의원(대구 북구 갑)의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휴대전화 명의도용 건수는 총 2만1031건이며 관련 피해액은 모두 123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권 의원은 "명의 도용은 분실 또는 위·변조된 신분증으로 발생한다. 휴대전화 명의 도용에 따른 선의의 피해자 속출을 막기 위한 종합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소비자원 부산본부 관계자는 "휴대전화는 개인정보만 알아도 인터넷으로 쉽게 개통할 수 있어 명의 도용 피해 사실을 피해 당사자가 입증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