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조 독일 베를린자유대 종신교수가 본지 인터뷰에서 "부산이 서울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혁신적 리더십을 바탕으로 스스로 발전전략을 짜야 세계적 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 낙동 실리콘 밸리란

- IT·영상·디자인 등 SW분야

- 1인벤처 등 창업공간 조성

- 이런 게 바로 창조경제

# 지식경제전쟁 대처법

- 방치된 부산의 내재적 지식 

- 中企 활용 사업화하면 승산

# 부산이 재도약 하려면

- 중앙정부에 의존해선 안돼

- 혁신적 리더십·산학협력 등

- 스스로 발전전략 마련 필요

# 남북한이 하나되려면

- 통일 논의 동족주의 벗어나

- 北과 자유가치 공유가 우선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석학의 눈빛은 형형했다. 답변은 에둘러가는 법이 없이 직언, 직설로 일관했다. 박성조(78) 베를린자유대 종신교수. 추석을 쇠러 고향인 부산을 찾은 그를 '원로와의 대화'에 초대했다. 그의 감각과 촉수는 국제경제, 창조경제, 인권, 통일 문제에 이르기까지 실로 '글로벌하게' 퍼져 있었다. '낙동 실리콘 밸리'를 만들어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주면서 부산의 미래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목에선 목소리가 커졌다.

-오랫만에 한국에 왔다지요. 어떤 목적으로 오셨나요.

▶지난 8월말 베트남에서 열린 '아시아 경영연합회' 총회에 초청돼 기조강연을 하고 들어왔어요.  몇 군데 강의요청이 들어와 소화할 필요도 있었고요.

-요즘 바깥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습니까.

▶변화들이 많아요. 내가 사는 베를린시는 한동안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근래들어 유럽의 문화수도로서 변신에 성공한 듯합니다. 다문화, 관광, 학문, 창조산업, 청년 창업 등이 아주 활발해요. 무엇보다 젊은이들이 모여들고 있어요.

-이번에 가보신 베트남은 어떤 변화가 있던가요?

▶하노이에서 한국 기업가들을 몇 분 만났는데, 뭔가 북적북적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1970~80년대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경제부흥이 일어나고 있었죠. 노동집약 산업을 하면서도 고부가가치 산업에도 눈뜨고 있었고요. 베트남 현지인들의 한국어 실력도 보통이 아니더라고요.

-한국은 무엇이 달라진 것 같습니까.

▶걱정입니다. 때이른 조로(早老) 현상을 보인다고 할까. 일찍 샴페인을 터뜨리고 즐기는 분위기도 있어요. '다이내믹 코리아'의 역동성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요. 공항 사람들도 외국에 비해 불친절한 편이고요.

-세계는 지금 지식경제전쟁 중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중시하고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합니까.

▶베트남에서 기조강연을 한 주제가 이겁니다. 지식은 면허, 특허 등으로 얘기되는 외재적 지식과 축적된 경험, 숨겨진 가치나 전통, 드러나지 않는 노하우 등을 말하는 내재적 지식이 있어요. 여기서 내재적 지식이 중요합니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걸 확보하려고 혈안이죠. 한 도시가 갖는 내재적 지식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일본에선 요즘 종신고용제도가 유행이라지요.

▶네. 우수인재 확보와 유지 전략을 선제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거죠. 이른바 글로벌 탤런트 매니지먼트(Global Talent Management)라는 겁니다. 요즘 좋은 기업은 금전적 처우뿐만 아니라 승진, 복지, 근무환경까지 좋아야 합니다. 부산지역 기업들도 이런 부분에 눈을 떠야 합니다.

-도시 차원에서 내재적 지식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는데, 부산에는 어떤 게 있을까요.

▶예컨대 부산이 지향하는 해양수산도시가 갖는 내재적 지식이 있겠지요. 자갈치에 왜 생선요리 아카데미가 없습니까? 기장에는 미역과 멸치가 유명한데, 이를 즐기고 체험케하면서 지식전수까지 하는 프로그램은 없는 겁니다. 기장 대변이나 일광에는 옛날부터 소형어선을 만드는 전통이 있었는데, 이런 것도 되살려야 합니다. 이러한 분야의 학회나 아카데미, 연수원 같은 게 필요하죠. 부산은 지금 이러한 내재적 지식을 방치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라이프스타일 사업을 키워야 한다는 얘기 같습니다.

▶대기업도 필요하지만 결국은 중소기업이 지역경제를 살립니다. 부산이 갖고 있는 내재적 지식을 활용하는 데는 중소기업이 제격이죠.

-부산에 들어와 있는 다국적 기업을 활용할 수는 없습니까.

▶기업 차원에선 몰라도 개인적으로 들어가면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고 봅니다. 몇 년 전 다국적 기업 관계자들을 인터뷰해 보니, 부산 지역사회에 재능기부 또는 봉사할 의향이 많았어요.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시스템이 필요할 듯합니다.

-부산은 청년 실업률이 8.7%에 이를 정도로 심각합니다. 어떤 대책이 있을 수 있을까요.

▶'젊은 두뇌들'이 부산을 이탈하는 건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들을 붙잡을 묘책이 빨리 나와야 합니다.

-어떤 묘책이 있을까요.

▶물류산업단지나 에코델타시티 같은 큰 사업도 필요하지만, 작지만 손에 와닿는 사업이 중요합니다. 이 자리에서 낙동강 하구에 가칭 '낙동 실리콘 밸리'를 만들 것을 제안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인가요.

▶해양공학이나 IT, 영상, 디자인 등 소프트웨어 관련 젊은 창업자들에게 사업공간을 주자는 취지입니다. 부산에는 이런 분야의 인재가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일자리가 없어 부산을 떠나고 있습니다. 규모가 클 필요도 없습니다. 1인 창업 또는 2, 3인 벤처기업을 소규모 단지화해서 5, 6개를 만드는 겁니다. 공장 한 동이 있어도 되고, 부지 몇 백평만 있어도 세울 수 있습니다. 이런 게 창조경제입니다. 국비 지원도 가능할 것입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실리콘밸리에 비하면 낙동강 하구는 교통도 양호한 편이에요. 서병수 시장이 적극 연구해 시행했으면 합니다.

-카지노나 원전 문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복합 레저산업으로 본다면 카지노도 필요합니다. 원전은 정말 골칫덩어리입니다. 고리1호기 같은 것은 이제 퇴역시켜야죠. 사고가 나면 모든 것이 끝장입니다.

-국내에선 '통일 대박론'이 나왔는데요.

▶독일에서 보니 전혀 대박이 날 것 같지 않아요. 통일의 핵심은 자유 실현에의 갈구입니다. 동족(同族)주의에서 벗어나 북한과 자유의 가치를 공유하는 것에서 통일 논의가 시작돼야 합니다.

-제2도시 부산 발전을 위한 제언을 해 주십시오.

▶부산 스스로가 이뤄내야 합니다. 중앙을 쳐다보고 의지해서는 답이 나오질 않아요. 세계적인 제2도시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프랑스 리옹, 중국 상하이, 미국 뉴욕 등은 내재적 지식을 통한 스스로의 발전 전략을 짜서 성공한 도시들입니다. 이를 위해선 혁신적 리더십, 적극적인 산학협력 등이 바탕이 돼야 하겠지요.

# 아시아인 최초 독일 대학 정교수된 석학…대십자 공로훈장 받기도

■ 박성조 교수는

인터뷰 자리에 앉자마자 박성조 베를린자유대 종신교수는 "몇 년 전 부산인적자원개발원과 국제신문이 함께 주창한 지식창조도시는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다. 미지근한 대답이 나오자 실망을 빛을 보인 박 교수는 "그때 만약 부산시장이 그것을 받아들여 중장기 정책을 폈더라면 부산에 인재가 북적거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기장초등학교와 경남중·고교를 나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1959년 독일로 건너가 베를린자유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3년 아시아인 최초로 독일 대학 정교수 자격을 취득했고 보훔대 동양학부 학장, 베를린자유대 사회과학부 학장 등을 지냈다. 최근에는 중국 옌볜 과기대와 세르비아 메가트렌드대 총장을 지낸 바 있고, 서울대 행정대학원 초빙 석좌교수, 동아대와 세종대에서도 석좌교수를 지냈다. 베를린자유대 내 한국학센터 건립 및 한·독 학술교류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 2월에는 독일정부가 주는 '대십자 공로훈장'을 받았다.

박 교수는 스스로 '기장(대변) 촌놈'이라고 부를 정도로 고향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50여 년간 외국생활을 해오면서도 고향에 오면 기장 죽성리의 선산을 둘러보고 친구들도 만난다. "귀향할 생각은 없느냐"고 묻자, 그는 씁쓰레한 표정으로 "누가 불러줘야 말이지…"라며 말꼬리를 감췄다. 석학은 고향을 잊지 않고 있는데, 고향은 그를 잊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대담=박창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