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부산 북구 구포3동 한 아파트의 무너진 경로당 인근 현장에서 북구 관계자와 군 장병들이 복구 작업을 벌이고 있다. 전민철 프리랜서 jmc@kookje.co.kr

- 1·2·4호선 환기·출입구 타고
- 지하 선로에까지 빗물 줄줄

- 차량통제 제대로 안 이뤄져
- 시내 도로 최악의 귀가전쟁

- 유관기관 간 손발 안 맞아
- 상황 보고·접수도 제각각

- "시 재난 대응력 이것밖에…"
- 서 시장 대책회의서 진노

서병수 부산시장이 26일 폭우 피해 복구 대책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진노했다. 서 시장은 좀처럼 흥분하는 성격이 아니다. 이날은 달랐다. 차분히 말하면서도 지시사항 속에는 분노와 실망을 담았다. 부산시가 재난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엄중한 경고로 해석된다. 그의 지시사항을 새겨 보면 이번 재난 대응의 문제점이 그대로 녹아 있다.

■ 안전한 도시철도 물에 잠겨

서 시장은 이날 오전 시청 15층 재난상황실에서 관계 공무원에게서 피해 복구 대책을 들은 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총 5가지를 지적했다. 가장 먼저 꺼낸 것은 도시철도역 침수 피해였다. 지난 25일 집중호우로 1호선 노포~범어사역 구간과 2호선 화명역, 4호선 금사역이 물에 잠겼다. 환기구와 역 출입구 계단을 타고 물이 흘러들어 가면서 선로가 침수된 것이다. 이 때문에 이들 역과 구간을 제외하고 구간 운전이 시행됐다. 서 시장은 "환기구와 출입구를 통해 물이 들어갔다는 사실이 말이 되느냐. 도시철도가 생긴 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수십 년 지난 선로에 왜 빗물이 들어가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환기구와 출입구의 턱을 높이는 등 개선책을 세우라는 것이다.

■ 최악의 귀가전쟁 '수수방관'

서 시장이 두 번째로 지적한 것은 최악의 귀가전쟁이었다. 56곳의 도로가 유실되고 파손되면서 곳곳에서 극심한 정체가 빚어졌다. 24곳에서 교통통제가 이뤄지면서 시내 도로 곳곳은 동맥경화에 걸린 듯 차들로 꽉 막혔다. 이런 현상은 밤늦게까지 이어져 시청 120민원콜센터에 불만이 폭주했다. 도시철도 운행이 중단됐다는 소식에 퇴근길은 자가용 차량이 쏟아졌다. 도로 곳곳이 침수되거나 파손돼 도로 사정이 최악인 상황에서 자가용 차량이 대거 몰리면서 극심한 교통전쟁을 치렀다. 서 시장은 "지인의 전화를 받았는데, 불과 2, 3㎞인 금정구 간선도로를 빠져나가는 데만 3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이건 말이 안 된다.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시민에게 도로 통제 상황을 알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홍보하는 방법이 없었느냐"고 호통쳤다. 이날 오후 도시철도 일부 구간 운행 제한 등으로 최악의 퇴근전쟁이 예상됐음에도 안내방송이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한 승용차 이용자제와 대중교통 이용 홍보 등은 없었다.

■ 관계기관 간 협조도 미흡

이번 재난 때 아쉬운 대목은 관계기관 간 협조였다. 부산시 재난상황실에는 관계기관에서 파견된 공무원이 나와 있었으나, 현장에서는 손발이 잘 맞지 않았다. 부산시는 경찰과 소방의 상황 보고를 제대로 보고받지 못하고 구·군 보고에만 의존하다 보니 상황 파악이 늦었다. 언론에 보도된 사실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서 시장도 이런 대목을 아쉬워했다. 서 시장은 "현장에 교통정리를 하는 경찰이 잘 보이지 않던데, 왜 그랬나. 경찰과 협조 체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지난 25일 동래구 우장춘로 지하차도에서 발생한 차량 침수사고(사망 2명)는 관계기관 간 협조가 제대로 안 된 대표적인 사례였다. 경찰은 차량 통제를 꼼꼼히 하지 않았고, 소방은 구조가 늦었다. 행정은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도 재빨리 파악하지 못했다.

■ 재난 대응도 미숙함 드러내

시의 재난 대응력을 보는 전문가의 시각은 싸늘하다. 부산은 2003년 9월 태풍 '매미' 이후 이번과 같은 피해를 낸 자연재난이 없었다. 대형 재난이 없어 다행이지만, 반대로 시와 일선 구·군 등 행정기관과 공무원의 대응력은 한참 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구는 구포동 양덕여중 피해 사실을 잘못 전달해 혼선을 빚었다. 북구청이 학교 3층까지 물이 찼다며 보고하자 이에 대한 검증 없이 상황 보고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이 때문에 소방 구조인력이 과도하게 투입되고 말았다. 서 시장은 "시의 재난 대응 능력이 떨어진 것 같다"고 평가했다.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면서까지 분발을 촉구한 것이다.

■ '세월호' 이후 달라진 게 없다

서 시장은 "과거와 달라진 게 없다"며 대책회의를 마쳤다. 수많은 인명이 희생됐지만, 우리 사회의 대응력은 과거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질타한 것이다. 2시간가량 진행된 집중 호우에 견디지 못하고 5명이 목숨을 잃었다. 최대 244.5㎜의 비가 내렸지만 5명의 인명 피해를 낼 정도는 아니라는 게 대부분 시각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이런 까닭에 세월호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온갖 부산을 떨었지만 결국은 제자리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