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차량 막아선 실종자 가족- 세월호 침몰 사고 실종자 가족이 20일 새벽 청와대 항의 방문을 막지 말라며 정홍원 국무총리의 차량을 가로막고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 자연·사회 복합재난에 취약
- "총리급이 지휘 맡아야"

정부가 지난 2월 완성한 재난대응체계는 실전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준비없이 사회재난 총괄을 맡아 예정된 실패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새 재난체계 준비 소홀로 '우왕좌왕'

현 정부 재난대응체계의 설계도 격인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은 지난해 대수술을 거쳐 지난 2월 7일부터 시행됐다. 이 법의 핵심은 안전행정부에 범정부 재난안전 관련 '컨트롤타워'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설치하는 등 사회재난 대응의 총괄기능을 안행부에 맡기는 것이다. 사회재난이란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처럼 자연재난을 제외한 다양한 인적재난을 가리킨다. 새 법 시행 이전에는 대형 재난이 터졌을 때 소방방재청이 사회재난 대응의 총괄기능을 담당했다.

방재 관련 단체와 전문가들은 법 개정 추진 과정에서 안행부로 사회재난 대응 총괄기능을 이전하면서 방재청의 전문인력을 흡수하지 않는 등 준비가 불충분하다며 개정을 반대했다.

사고 접수 후 한 시간 가까이 지나 꾸려진 중대본은 각 기관이 보고하는 숫자를 모으는 단순한 수집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 그것도 부정확한 통계 발표로 혼란을 자초했다. 중대본이라면 현장을 지휘하는 해양경찰청에 대해 인명 구조에 필요한 신속하고도 정확한 결정을 내리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그만큼 재난 분야 국내 최고의 전문가로 구성해야 하는 것이다.

■자연·사회재난 이분화도 문제

재난이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으로 이분화된 것도 정부 재난대응체계의 허점으로 지적된다. 정부는 각 부처로 흩어진 재난관리의 일원화를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재난의 총괄주체가 안행부와 방재청으로 이원화됐다.

이런 탓에 집중호우(자연재난) 때 낡은 시설(사회재난)이 붕괴했다면 재난 대응 책임 기관이 어디인지부터 먼저 가려야 한다. 사회재난과 자연재난의 성격이 섞인 복합재난은 귀중한 초기 시간을 더 허비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방재학회와 한국방재협회는 지난해 안행부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태풍으로 인한 화학물질 누출이나 동일본 대지진 후 발생한 원전사고 같은 대형 복합재난이 터지면 어느 기관이 총괄 조정할 것인지에 대한 방안이 없다"고 지적했다.

■총리 나서면서 중대본 역할 실종

중대본이 처음으로 대형 재난을 겪은 탓에 수습 능력이 부족했는데, 정부는 그나마 법으로 정한 컨트롤타워를 의미 없는 존재로 전락시켰다. 지난 17일 정부가 세월호 사고 수습과 사후 대책을 총괄할 범정부 차원의 대책본부를 목포 서해해양경찰청에 구성했고, 정홍원 국무총리가 본부장을 맡으면서 중대본이 설 자리가 애매해졌다.

'국무총리 대책본부'가 더 강력하게 재난에 대응한다고 볼 수 있지만, 법으로 정한 조직을 부정해버린 셈이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정부도 대형 재난 상황에 새 재난대응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했다고 볼 수 있다.

방재 관련 단체의 한 관계자는 "총리가 전면에 나선 이상 정부조직 직제상 아래인 안행부 장관(중대본부장)은 운신의 폭이 크게 좁아졌다"고 말했다.

■재난대응체계 서둘러 정비해야

이영재 한국방재안전학회장은 "사고 이후 안행부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해양수산부에 중앙사고수습본부가 꾸려졌지만 역할 분담이 잘못됐다. 이번 사고는 해상 사고인 만큼 상황 통제는 해수부가, 지원은 중대본이 하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부처 간 유기적 협조가 이뤄지지 않은 현 재난대응시스템은 이제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 이번 같은 대형 재난에서는 안행부 장관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부총리나 총리가 총괄 지휘를 맡아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