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구 반송동 청년카페 나무의 운영진이 한자리에 모여 카페 운영 방안에 대해 회의를 하고 있다. 이 카페는 마을기업 변화의 시나리오가 운영한다.

- 2011년 지역공동체
- 주부 강점 활용해
- 저소득층 일자리 창출

- '날마다 소풍' 도시락
- 단체 주문 없어져 폐업

- 마을카페 '나무'는
- 영업시간 한계 벗어나
- 청춘카페로 탈바꿈
- 사랑할레몬차·힘내라떼
- 톡톡 튀는 메뉴 눈길
- 한뼘가게·영화 상영도

- 자금 넉넉하지 않아
- 지자체 공모사업 도전
- 회원 모집·후원 등 기대

2011년 지역공동체가 주축이 돼 시작한 부산 해운대구 반송동의 마을기업 '변화의 시나리오'가 제2막을 올렸다. 지역 내 주부들의 강점을 활용해 도시락 사업, 카페 운영 등을 통해 저소득층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최초의 사업방식에는 조금 변화가 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한 일을 해나간다는 목적은 변함없지만, '젊은 피'가 새롭게 사업의 전면에 나섰다.

2011년 이후 '제1막' 시절을 이끌었던 반송의 지역공동체 희망세상 40~50대 주부 회원들은 나무를 지탱하는 뿌리 역할을 맡기로 하고, 대신 젊은 회원들이 줄기가 되어 세상에 나섰다.

■경영난에 도시락 폐업

	잡지 '청년 보통 씨' 창간을 위한 모임 모습. 변화의 시나리오 제공

마을기업 변화의 시나리오가 처음 시작했던 사업은 크게 도시락을 만들어 파는 '날마다 소풍'과 마을카페 '나무' 두 가지였다. 도시 직장인에게 즐거운 점심을 제공한다는 목표로 시작한 날마다 소풍은 요리를 잘하는 주부층이 참여해 복지관·지역단체·기업과 연계를 맺고, 단체 도시락을 판매해 수익을 올리겠다는 구상이었다. 요리교실을 열어 매출을 키우고 사회 기여 활동도 한다는 목표도 중요했다. 이를 위해 홍보를 하고, 예약제로 정성이 담긴 엄마손 도시락을 판매했다.

하지만 생각만큼 도시락 판매가 쉽지 않았다. 반송에는 수십 개씩 도시락을 구매할 단체나 기업이 없었다. 기장군의 한 공장에서 하루 평균 도시락을 40개가량 주문한 덕에 직원 3, 4명의 급여를 해결할 정도로 근근이 사업을 지속했다. 그러나 이 공장이 지난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면서 날마다 소풍은 '일주일 소풍'이 될 정도로 매출이 급격히 줄었다. 직원 급여를 주지 못할 정도로 경영이 어려워지자 결국 지난 2월 날마다 소풍은 3년간의 여정을 마무리하고 사업을 접었다.

■청춘 나무로 재탄생

변화의 시나리오가 운영하던 반송동 마을카페 나무는 주민의 모임 장소, 프리마켓 공간 등의 역할을 하며 영업을 이어왔다. 하지만 주부들이 중심이 돼 운영하다 보니 영업시간에 한계가 있었다. 오전 11시에 문을 열어 오후 7시께면 문을 닫아야 했다. 직장인이나 학생이 일과를 마치고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시간이면 어김없이 카페의 불이 꺼진 것이다. 낮 시간 영업으로는 카페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희망세상이 운영하는 느티나무 도서관 사서로 일하던 손수진(여·31) 씨가 카페의 변화를 제안하고 나섰다. 마을카페의 틀은 유지하되 젊은 층이 편하게 찾는 청춘카페로 전환하자는 것이었다. 손 씨는 청춘카페 여러 곳을 돌며 자료 수집에 나섰다. 손 씨 자신이 카페의 대표를 맡으면서 김성원(23·동아대 사회복지학과) 씨를 공동대표로 앉히는 등 '열매회원'(열정적이고 매력 있다는 뜻) 11명을 창립 회원으로 구성했다. 이들은 매주 회의를 해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청춘카페 나무를 키워 나가고 있다.

■청춘의 소통

카페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시선이 가는 곳은 메뉴판이다. 청춘카페 나무의 메뉴는 크게 3종류로 나뉜다. 검은 차·으랏차차·차차차. 검은 차는 커피류, 으라찻차는 전통차와 허브차, 차차차는 차가운 음료다.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재치가 더 통통 튄다. '사랑할레몬차', '너뿐이오미자차', '힘내라떼'. 세상을 향한 청춘의 목소리를 담은 '반값등록금대학생강차', '원전반대추차' 등등. 모두 페이스북에서 공모해 선정한 것이다. 하나둘 참여하더니 어느새 800여 명이 메뉴 이름짓기에 동참했다.

카페를 운영하는 모든 것이 메뉴 이름 짓는 것처럼 이뤄진다. 카페 한쪽에 자리 잡은 '한뼘가게'는 회원이 직접 만든 머리핀부터 옷까지 사고파는 '청춘 용돈 벌어가기 프로젝트'의 하나. 매주 금요일 진행하는 '마실극장'은 커피도 마시며 영화도 즐기는 '프리미엄 영화관'을 지향한다.

토요일 밤에는 누구나, 아무나 '확그냥, 막그냥' 목청껏 노래하는 '야한 콘서트'가 열린다. 청춘남녀 짝짓기 프로젝트인 '카페나무 사랑걸렸네'도 곧 선보인다. 영업시간은 오전 11시에서 밤 10시로 정해져 있지만, 꼭 정해진 것도 아니다. '주인'(손님이 주인)이 있을 때까지 영업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카페를 찾는 손님이 '더' 낸 차 한 잔 값인 '더'는 지역 청소년에게 제공되는 음식값으로 쓴다.

■반송에서 세상을 외치다

손 대표를 비롯해 열매회원의 노력이 많지만, 카페가 제대로 운영되려면 자금이 더 필요하다. 카페 운영만으로는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 혈기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는 사실이 서글프지만, 이런 현실에 굴하지 않는 것이 청춘이다. 그래서 예산을 지원하는 부산시와 해운대구의 각종 공모사업에 도전하기로 했다. 마을만들기 지원센터에 한뼘가게와 재능기부를, 비영리민간단체 지원사업에 반송마을지도 제작 사업 등을 응모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청춘카페 나무가 써내려 가는 변화의 시나리오 마지막 장은 반송을 넘어 부산, 전국, 세계의 청춘과 함께하는 것이다. 그래서 회원 요건에 지역을 제한하지 않는다. 실제 김성원 씨를 비롯해 열매회원 4명이 서구, 금정구 등지에 산다. 지금은 열매회원 외 일반회원인 나무회원이 10명뿐이지만 목표는 500명. 그 이상도 기대한다.

손 대표는 "청춘카페 나무가 지역을 지탱하는 소중한 울타리로 성장하도록 많은 청춘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며 "단체나 기업의 후원이 있다면 더 튼튼하고, 큰 울타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인생살이 고민 끝에 희망세상 활동가로…'청년 보통씨' 잡지 만들기 전력

■ 손수진 대표

- "모두 서로 인사하는 마을 만들자" 목표 정해
- 청년 24명 모여 소통
- 연 2회 잡지 낼 계획

마을기업 '변화의 시나리오'를 맡아 운영의 시나리오를 써내려가는 '작가' 격인 손수진(여·31·사진) 대표는 조금 독특한 이력이 있다. 피끓는 청춘 시절 겪은 1년간의 방황이다. 대학을 졸업한 손 대표는 부산의 한 종합사회복지관에서 3년간 일했는데 그때 삶에 대한 깊은 고민이 밀려왔다.

2주 휴가를 내고 찾은 곳이 네팔. 여동생과 함께한 여행은 만족스러웠지만, 손 대표가 고민을 해결하기에는 짧았다. 손 대표는 결국 사표를 내고 1년가량 산티아고 트레킹을 떠났다. 하지만 인생살이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그러다 변화가 찾아왔다. 여행을 계기로 시작한 공정여행 모임에서 반송의 지역모임 희망세상 김혜정(여·43) 대표를 만난 것. 김 대표의 권유로 희망세상 활동가가 됐다. 활동가로 일하며 "모두 서로 인사하는 마을을 만들자"는 목표가 생겼다.

손 대표가 변화의 시나리오를 맡아 가장 신경을 쓰는 일은 잡지 만들기 프로젝트 '청년 보통씨'다. 24명의 청년 보통 씨가 모여 최근 처음 만났다. 공책 뒷장에 쓴 낙서, 휴대전화로 무심코 찍은 거리와 사람 등등. 일상의 순간을 잡지로 모아 나만의 청춘 이야기를 완성할 보통 씨들의 연합이다.

아직 정해진 양식은 없다. 서로 소통하며 청년 보통 씨들과 그들이 살아가는 마을 얘기를 담아 연 2회 잡지로 낼 예정이다. 작업은 2010년 지역의 독립영화 일꾼과 미디어 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이 힘을 합쳐 출범한 영상 전문가 모임 '미디토리'가 함께한다.

손 대표는 "희망세상과 변화의 시나리오를 통해 지인과 이웃의 삶에도 관심을 갖게 됐고, 미래를 꿈꿀 수 있어 좋다"며 "마을 사람 모두를 알고 인사할 수 있는 사이가 되는 것, 그 안에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이어주는 고리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