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7월 문을 연 전북 완주군 상관면의 로컬푸드 직매장은 아담한 규모지만 웬만한 농산물은 다 있다.

잘 삶은 고사리, 크기도 제각각인 늙은 호박, 갓 수확해 흙이 묻어 있는 시금치, 가을에 캐서 땅속에 묻어놨다 금방 꺼내온 무, 졸깃졸깃하게 마른 무말랭이 등등.

130여명의 농민이 직접 재배한 350여가지의 농산물을 계절에 맞게 내놓는다. 농가는 '1일 유통체계'를 원칙으로 직접 포장·진열하고 판매가격을 정하며 농협은 적정가격 예시 및 조정 역할을 한다.

한겨울의 쌀쌀한 오전 날씨에도 100평의 작은 매장에는 신선한 제품을 고르려는소비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채소, 축산물, 과일, 가공식품 등 이것저것을 둘러보고 만져보는 동안 어느덧 바구니는 꽉 차있다.

이 직매장은 농산물과 공산품을 한 번에 살 수 있는 '가게 안의 가게(Shop in Shop)' 형태다.

지역농산물을 판매하는 로컬푸드 직매장과 하나로마트를 결합한 복합 매장으로 꾸며졌다.

개장 이후 5개월 동안 매출은 3억5천만원, 한달 평균 7천만원에 달한다.

시내버스도 드문 한적한 이 시골마을에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 직매장 주경조 점장은 "물건을 내는 농민이나 판매를 담당한 농협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면서 "인근 도시민들이 자동차를 몰고 이곳까지 일부러 찾아올까 걱정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상관 로컬푸드 직매장이 인기를 끄는 것은 복잡한 유통과정을 간소화하고 신선한 제품을 지속적으로 공급한 덕분이다.

통상 농산물 유통은 농민∼산지 수집상∼도매시장 경매∼중간 도매상∼소매상을거쳐 비로소 소비자의 손에 도착하는 다단계 시스템이다.

이 때문에 국내 농산물의 평균 유통비용은 소비자 지급액의 45% 안팎으로 추정된다. 100원 중 45원이 유통과정에서 고스란히 사라지는 셈이다.

농가가 영세하고 조직화ㆍ집단화가 잘 돼 있지 않아 도매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손해 보는 구조였다.

그래서 이 직매장은 유통단계를 대폭 줄였다.

비닐하우스에서 수확한 딸기를 농민은 자신의 차에 실은 뒤 이 직매장에 갖다 놓는다. 그게 유통과정의 전부다. 판매를 위해 도시까지 나가야 하는 수고로움과 운송비 부담도 덜고 판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처럼 '유통의 고속도로'를 달린 덕에 농산물의 신선도가 높고 가격도 20%가량저렴하다.

질 좋은 공급이 소비를 창출함으로써 농민과 도시민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선순환 구조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이는 나아가 신선함을 먹거리의 으뜸 덕목으로 여기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암묵적 합의구축으로 이어졌다.

상추, 고추, 딸기, 배추, 돼지고기 등에 붙은 생산자와 재배 일자 등은 얼굴도 모르는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말 없는 대화'를 가능하게 했다.

부지불식간에 밥상에 오르곤 하는 국적불명의 먹거리에 대한 불안감이 자연스럽게 사라진 것이다.

매주 정기적으로 이 직매장을 찾는다는 박삼주(56.주부.전주시 우아동)씨는 "여기에는 '언제나 신선한 물건이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아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채소나 과일을 사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씨는 무엇보다 지역 농민이 생산한 것이어서 안심하고 가족에게 먹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자신이 사는 곳에서 생산된 것을 먹고 살면 건강해진다는 이른바 정통 신토불이(身土不二) 먹거리인 셈이다.

특히 로컬푸드 직매장은 마땅한 판로를 확보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밭떼기' 식으로 헐값에 농산물을 넘기던 농민에게 안정적인 소득을 가져다줬다.

지난해 5개월간 벌어들인 4억5천만원은 매장 운영비 명목의 수수료(10%)를 제외하면 고스란히 농민들에게 골고루 돌아간다.

직거래는 농산물 이동 거리도 대폭 줄였다.

수집상이나 도매상 등 보통 4∼5단계를 거쳐야 하는 중간과정을 생략했기 때문이다.

완주 농산물이 수집상을 거쳐 서울 농수산물시장에 집결됐다가 다시 완주로 내려오는 비효율적인 유통시스템의 개선은 수백 ㎞에 달하는 불필요한 이동거리를 없앴다.

이에 따라 운송비용 절감은 물론 이산화탄소 등 환경오염을 줄이는 부가적인 혜택도 안겨줬다.

상관농협 직매장은 지난 20일 또 한 번 변신했다.

완주군과 농·축협이 최대주주로 주식회사 형태의 직매장을 생산자들이 주인이 되는 협동조합으로 전환한 것이다.

생산자들이 각각 10만∼50만원을 출자해 조합원으로 참여했다.

이는 '1인 1표제'에 따른 민주적 조직 운영이 가능해지고 직매장에 참여하는 농가와 소비자들이 주주로서 실질적 주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전국 로컬푸드 직매장 중에서 처음이다.

주경조 점장은 "농민 대부분이 고령이고 소농이어서 다품종 소량 생산체계로 운영한 것이 주효했다"면서 "농민은 매주 예금통장에 입금되는 판매금에 자존감이 높아지고, 도시민은 신선하고 안전한 농산물에 만족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