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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재발견 <13> 닥밭골 마을

부산판 '동피랑 마을' 북카페로 또한번 도약, 주민 합심 행복마을로

  • 하송이 기자 songya@kookje.co.kr
  •  |   입력 : 2013-03-27 20:06:59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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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부산 서구 동대신동 닥밭골 북카페에서 시민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홍영현 수습기자 hongyh@kookje.co.kr
# 동대신동 산복도로 주변 변신

- 과거 인구 줄고 재개발 안돼 공동화
- 자치위, 학생 등과 함께 '벽화마을'로
- 북카페엔 젊은이 몰려 잇단 재능기부

# 주민이 끌고 지자체가 밀고

- 운영위원들 자유토론 거쳐 결론 도출
- 구청 행정적 지원, 사업 공모 '도우미'
- 생활협동조합 등록 두 번째 도약 준비

구덕 운동장 앞 육교에 서서 운동장 건너편을 바라보면 오래된 단층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부산의 전형적인 산복도로 변 마을 풍경이 펼쳐진다. 왕복 8차선이 넘는 도로에서 조금만 안으로 들어서면 이내 굽이굽이 좁은 골목길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부산터널을 지나 대신여중 방면으로 한동안 골목길을 올라가다 보면 어느새 학교 뒤쪽 막다른 골목에 도착하게 되는데 길의 끝 그곳이 닥나무가 많아 이름 붙여진 곳, 닥밭골 마을의 시작이다.

■벽화로 싹트다

   
닥밭골 마을의 벽화. 홍영현 수습기자
지난 21일 오전 부산 서구 동대신동 닥밭골 마을을 찾았다. 가파른 시멘트 계단을 수십 개 올라가니 이내 화사한 벽화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오래되고 낡은 건물 벽에 들어앉은 그림은 하트, 나뭇잎 같은 단순한 그림부터 자치기하는 아이들, 빨래터 아낙까지 다양했다. 특히 이 동네 토박이 할머니, 터줏대감 개 등의 모습도 벽화 속에서 만날 수 있었다. 곳곳에 붙은 타일 속 시(詩)도 운치를 더했다.

이곳의 행정구역은 부산 서구 동대신2동 9통. 차가 들어오기는커녕 사람 두 명이 지나다니기도 복잡한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집이 줄줄이 붙어 있는 이곳은 불과 4년 전까지만 해도 '외로운' 곳이었다. 노인을 제외하고 젊은이가 하나둘씩 빠져나가면서 열 집 중 세 집은 빌 정도로 공동화도 심해졌다. 그만큼 치안 불안도 커지면서 더더욱 외면받는 곳이 되었다. 더군다나 산복도로 변에 있다는 이유로 고도제한에 걸려 재개발조차 되지 않아 남은 주민은 이웃이 떠나는 것을 속절없이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변화는 슬그머니 찾아왔다. 2009년 주민자치위원회를 중심으로 마을을 어떻게 살려볼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당시 한참 주목을 받고 있던 경남 통영의 동피랑 마을을 떠올렸다. 산 중턱에 다닥다닥 붙어 거주자 말고는 찾지도 않던 동네가 벽화 하나로 전국적 유명 관광지가 된 데 착안했다. 통영까지 견학을 다녀온 위원회 회원은 벽화로 마을을 살려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당장 그림을 그려줄 사람이 필요했다. 서여고 대신여중 등 주변 학교 학생들은 물론이고 동아대 미술 관련 학과 학생들과 일부 전문가도 가세해 마을 바꾸기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작은 벽화마을은 입소문을 타면서 주말이면 연인의 데이트 코스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지난해 한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이 이곳에서 제작되면서 소위 대박이 났다. 하은옥(여·56) 닥밭골 행복마을 운영위원장은 "당시 주민자치위원회에는 50대인 내가 제일 젊을 정도로 나이가 많은 분밖에 없었다"며 "인근에 감천문화마을이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보 없이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북카페에서 희망을 찾다

벽화마을이 조성된 후 이를 활용하고 관리할 인력과 장소가 필요했다. 그때 마을 입구에 쓰레기 더미만 가득 찬 채 방치돼 있던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먼저 서구청의 도움을 받아 2010년 이곳에 컨테이너 두 동을 설치했다. 활용 방안을 고민하던 주민들은 사랑방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커피숍 겸 북카페를 만들기로 했다.

북카페가 만들어지자 공동체 만들기에 속도가 붙었다. 북카페가 바리스타 교육 장소로 활용되면서 자연스레 젊은이가 몰려들었다. 주변 주민뿐만 아니라 사하구 다대포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싼값에 커피를 마시고 책도 볼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이곳을 찾는 방문객의 발길도 이어졌다. 이곳에서 상주하는 바리스타 이애령(여·48)씨는 "하루에 20명 정도 꾸준히 방문한다"며 "현재 북카페 회원은 200명 정도"라고 귀띔했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주민들은 닥밭골 북카페를 알리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갔다. 서구에서 열리는 다양한 행사마다 북카페 이름으로 참가했고 여름에는 송도해수욕장에 부스를 차리고 북카페를 운영했다. 커피를 팔아 운영비를 벌고 해수욕장 이용객을 상대로 부지런히 북카페를 홍보했다.

이렇게 북카페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닥밭골 마을로 스며들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이의 가세는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우연하게 이곳을 찾은 사람이 북카페의 취지를 듣고 흔쾌히 재능기부에 나서는 일도 늘고 있다. 한 미술 작가는 이곳에서 아이를 대상으로 무료 강의를 하기로 했고, 기타 연주가도 일주일에 한 번씩 기타교실을 열기로 약속했다. 하 위원장은 "북카페는 닥밭골 공동체의 구심점"이라고 말했다.

■민-관 협동이 성공의 열쇠

   
하은옥 닥밭골 행복마을 운영위원장이 닥밭골 북카페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홍영현 수습기자
닥밭골 마을을 움직이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주민이다. 10여 명의 운영위원은 매주 북카페에 모여서 현안을 토의한다. 누구 한 명이 주도적으로 끌고 나가기보다는 난상토론처럼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하고 그 속에서 합의점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그래서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 더디지만 그만큼 불만은 줄어든다.

오롯이 이들의 힘만으로 마을을 꾸미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당장 시설을 확충할 자금을 끌어오는 것이 문제였다. 이때 지자체가 도우미로 나섰다. 회의 때마다 참여해 행정적인 조언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모 사업에 응모해 지원금을 충당하는 역할도 떠맡았다. 하 위원장은 "지금까지 시설 부족으로 고민한 적은 없다. 잊을만하면 서구청에서 여러 사업에 공모해 사업비를 따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덕에 처음에는 컨테이너 두 동만 덩그러니 있던 곳에 990㎡ 규모의 그린테마공원이 들어섰고 지난해 행복마을로 선정되면서 북카페 바로 옆에 별도의 건물이 들어섰다. 마을 공동체 규모가 커지면서 공간 부족으로 고민이 많던 주민들은 이번 회관 건립으로 숙원을 해결했다. 서구 창조도시전략사업단 윤성욱 주무는 "닥밭골 마을이 잘 운영되다 보니 전국적인 공모사업에 지원하면 잘 당선됐다"며 "특히 행복마을로 선정되면서 힘을 많이 얻게 됐다"고 설명했다.

닥밭골 주민들은 요즘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생활협동조합으로 등록해 두 번째 도약을 준비하는 것이다. 하 위원장은 "아직은 100% 완성단계가 아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단계"라며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힘을 합치겠다"며 웃었다.


# 새롭게 준비하는 사업- 부산역~닥밭골 코스 '산만디 오감 트레킹'

- 잊혀진 마을·이야기거리 탐방
- 북카페서 인문학 강좌도 준비

닥밭골 마을 주민들은 요즘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름 하여 '산만디 오감 트래킹'. 기억 속에서 지워져 가는 마을과 그 속에 숨어 있는 추억을 이야깃거리 삼아 매월 산복도로 주변 골목길을 탐방해보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지난 1월부터 본격적인 준비작업에 돌입한 주민들은 첫 트래킹 코스로 동구 부산역 분수대에서 출발해 근대건축물인 백제병원, 남선창고 부지를 지나 영주동 디오라마 전망대~민주공원~닥밭골 벽화마을로 돌아오는 길을 선택했다. 약 2시간가량 걸리는 이 길은 '산만디'라는 이름에 걸맞게 평지보다는 오르막길이 많다.

처음에는 구덕운동장 앞에서 아미동 비석마을까지 가는 길도 구상했으나 직접 걸어보니 자동차 매연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고 볼거리나 이야깃거리가 약하다는 판단에 따라 우선 부산역~닥밭골 코스부터 운영해보기로 했다.

이와 함께 주민들은 걷기에서 머물지 않고 북카페에서 인문학 강좌도 열 계획이다. 하은옥 닥밭골 행복마을 운영위원장과의 인연으로 서창우 보수초등학교 교사가 강사로 나서기로 했다.

운영위원회는 북카페와 동 주민센터를 통해 참가자를 모집해 4월 중순께 첫 트래킹에 나설 계획이다. 하 위원장은 "사전 답사할 때 주민들이 스스로 아이를 데리고 나올 정도로 호응이 좋았다"며 "첫 트래킹 후 부족한 점을 보완해 정례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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