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마루한의 한창우(83) 회장은 60만 재일 한국인들의 성공 아이콘으로 통한다. 마루한은 연간 2조5000억 엔의 매출을 올리는 일본 내 11,12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 회장은 평소 돈을 버는 것보다 가치있게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소신으로, 활발한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있다.

경남 사천이 고향인 그는 2010년 사재 50억 원을 출연해 자신과 부인의 이름을 딴 '한창우·나가코 교육문화재단'을 사천에 설립했다. 이어 64억 원으로 기금을 늘려 해마다 학업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해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또 지난해 11월에는 사천시가 사천 지명 탄생 600주년(2013년 11월)이 되는 것을 기념해 추진하는 사천시민의 종 제작 사업비 30억 원을 기부했다.

지난 21일 사천 남일대해수욕장이 한눈에 보이는 사천시 향촌동 엘리너스호텔 1층에서 한 회장을 만났다. 그의 얼굴은 자상한 이웃집 할아버지와 같이 온화했다.

-건강한 모습이 인상적인데, 비결은.

▶항상 긍정적 사고로 생활하고 있다. 아침에 5.5㎞가량 걷다가 현재는 부담을 느껴 3.5㎞가량 걷고 있다. 젊은 친구들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빠르게 걷고 있다. 취미로 클래식 등 음악듣기를 생활화한 것이 건강하게 사는 데 도움을 주는 것  같다.

-고향을 방문할 때마다 느낌이 다를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에는 어떤 일로 왔나.

▶3년 전에 설립한 한창우·나가코 교육문화재단의 장학금(49명, 7400만 원) 전달과 청소년음악회 개최를 위해 왔다. 또 아버지 제사를 모시는 것도 이번 방문의 목적이다. 문화사업으로 기획한 이번 콘서트는 문화혜택을 받지 못하는 고향의 초·중·고교생들에게 성공적인 삶과 나눔의 가치를 일깨워 주고자 마련했다. 1년에 1,2차례 고향을 방문한다. 올 때마다 변화가 많다. 한국의 경제가 나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고향의 발전상을 보면 한국경제가 좋은가 하고 착각할 정도이다.

-한창우·나가코 교육문화재단의 향후 계획은.

▶처(나가코)가 저의 고국인 한국에 장학재단을 설립하는 것에 선뜻 찬성해 사재 50억 원 출연으로 재단을 설립했다. 기금을 계속 늘려서 많은 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겠다.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해 장학금을 전달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다. 특히 교육·문화·예술·체육 등으로 영역과 대상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맨주먹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성공했다. 삶의 신조는.

▶모든 것을 나 자신이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내게는 자립정신이 있다. 일본인을 앞서고자 남들이 8시간 일할 때 16시간 일했다. 노력을 배로 했다. 사회봉사도 배로 했다.

-마루한을 일본 30대 그룹으로 성장시켰다. 경영철학은 무엇인가.

▶급한 일을 먼저 하지 말고, 옳은 일을 먼저 하라고 강조한다. 상(商)도덕이 가장 중요하다.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그 회사는 반드시 망한다. 신용도 지켜야 한다. 돈은 깨끗하게 벌고 깨끗하게 써야 한다. 또 기업가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윤리성과 도덕성이다.

-도전에 나서는 후배 기업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헝거리 정신'과 '챌린지(도전) 정신'을 잃어 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또 다른 사람보다 두서너 배의 노력을 하면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얘기하고 싶다. 배가 고파야 열정이 생긴다. 도전하지 않으면 퇴보한다. 그리고 조직에는 항상 긴장감이 흘러야 한다. 인력 채용 때 학력보다 실력을 우선시해야 한다. 특히 친인척이나 지인 자녀 등을 직원으로 뽑는 것은 독약이다.

-경제난으로 한국의 젊은이들이 취직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고 싶은 말은.

▶취업의 문은 국내 기업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국외에 더 많이 존재하고 있다.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 나는 10대의 어린 나이로 일본으로 건너가 수많은 역경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지금 대학생들은 예전보다 여건이 훨씬 좋아져 자신의 꿈을 크고 넓게 가진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남을 탓하며 시간 낭비하지 말고 오로지 자신의 인생·미래가 어떻게 하면 달라질까 고민해야 한다. 어려운 난관에 부닥쳐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

-지난해 동포 기업인들과 함께 인천국제공항 주변 영종도에 1조 원 이상을 들여 해양리조트를 건립하겠다고 했다. 진척 상황은.

▶나를 비롯해 동포 기업인들로 이뤄진 ㈜세계한상드림아일랜드가 투자하는 것이다. 동포 기업인들의 국내 투자로는 사상 최대 금액이다. 동포기업인들의 투자 문의가 잇따르고 있어 기대가 크다. 오는 4, 5월에 국토해양부로부터 허가가 날 것으로 본다. 허가가 나면 투자계획을 확정해 발표할 계획이다. 현재 315만 ㎡ 부지에 ▷골프장·체육시설 등 스포츠파크 ▷초고층 빌딩과 비즈니스센터 ▷해양생태공원 ▷공항·항만을 연계한 복합물류단지 등 4개 시설을 건립할 계획이다. 내 나이가 많아 마음이 급하다. 3~4년 안에 완공하도록 하겠다.

-부산 경남에는 투자할 의향이 없나.

▶사업성이 있으면 투자하겠다. 수년 전 통영시로부터 세계적인 오페라하우스 투자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검토 끝에 사업성이 없어 무산된 바 있다. 모 업체로부터 동부산관광단지 투자 제의를 받았다. 현장을 둘러보고 사업성을 검토할 계획이다.

-한일 관계는 어떻게 정립돼야 한다고 보나.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인시절 과거를 용서하고 미래를 보고 나아가자고 했다. 그러나 취임 후 자신의 발언을 뒤집고 독도를 방문해 양국 관계가 악화됐다. 일본 국민 98%의 지지를 받는 일본천왕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했다. 이는 교양 없는 짓이다. 한국과 일본은 정말 가깝고 밀접한 관계에 있다. 서로 도와야 발전할 수 있다.

-새 정부에 대한 기대와 당부하고 싶은 말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지지한 한 사람으로서 역대 대통령 중 제일 좋은 정치를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은 본인 아니면 아들이 구속되는 불행한 사태를 겪었다. 박 당선인은 대한민국과 결혼했다고 했다. 박 당선인은 부정부패가 없는 가장 깨끗한 정치를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015년 한일 국교 정상화(한일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양국 간 조선통신사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조선통신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 한일 문화의 실크로드로, 양국의 문화와 경제 교류 활성화에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조선통신사 행렬이 지나간 일본지역에 귀무덤과 무사 도도다카노리 부인(한국에서 붙잡혀 온 여인) 이야기 등 문화유산이 많다. 이들 소재를 발굴해 오페라 등으로 작품화해도 좋을 듯싶다. 조선통신사 문화유산이 유네스코로 지정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

-2002년 일본 국적을 취득한 걸로 안다. 국적 때문에 기업 운영에 어려움이 있었나.

▶(재외)동포들이 거주 국가의 국적을 따서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도 되는 게 애국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민족의 피는 바꿀 수 없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한민족이다. 국적을 바꾸면서 이름은 한창우로 했다. 이걸 안 해주면 국적을 안 바꾸겠다고 겁박을 했다. 국적은 그 나라에서 살 권리를 따는 것이다. 일본 사회에 한국이름을 가진 일본 국민이 많아지면 한국에 이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재일동포를 대표해서 한창우라는 이름으로 처음으로 국적을 따냈다. 

# 한 회장의 성공과정은

- 교외 대형점포 개설 등 파친코 경영 혁신 이뤄

밀항선을 타고 일본에 간 16세 소년 한창우가 연매출 2조5000억 엔의 거대 한상(韓商)이 되기까지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다. 교포 아이들을 가르치고 재일교포단체 사무실에서 일을 하며 주경야독으로 힘겹게 도쿄 호세이(法政)대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그러나 일본 사회는 그에게 취업의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1953년 교토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마을 미네야마에서 파친코 가게를 운영하는 매형에게 간 것이 파친코 사업과 인연을 맺은 계기가 됐다. 근처에 3배 규모의 파친코 가게가 생겨 문을 닫을 처지가 되자 그는 가게를 성공시켜 두 배로 갚겠다며 매형을 설득해 가게를 인수했다.

파친코 경영에 인재 양성과 서비스 혁신 등을 접목시켜 '마루하니즘'이라는 신조어를 낳기도 했다. 대형 볼링장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오일 쇼크와 과당 경쟁으로 42세에 60억 엔의 빚더미에 올라앉기도 했다.

교외에 차를 몰고 가서 즐기는 대형 파친코점을 일본에 처음 선보이는 등 1980년 등장한 신형 파친코기계(피버)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10년 만에 빚을 다 갚고 재기에 성공했다. 마루한을 시장점유율 70%의 부동의 1위 파친코업체(점포 수 258개, 기계 15만여 대)로 키워냈다. 또 보험, 건축, 식품, 광고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다 수년 전부터는 라오스, 캄보디아 등의 은행업에 진출했다. 전체 직원 수가 1만5000명에 이르는 일본 내 11, 12위 기업을 일궈냈다.

▶한창우 회장 약력

1931년 경남 삼천포에서 출생

1945년 밀항선 타고 일본 시모노세키 도착

1952년 호세이대학 경제학부 졸업

1957년 파친코업체 ㈜마루한 창업

1967년 교토에서 볼링장 사업 진출

1972년 60억 엔 빚 떠안고 도산

1973년 파친코 사업 재개

1993년 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 결성

1995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1999년 일본정부 훈장 서보장

2009년 동아대·경상대 명예법학박사 학위

2010년 한창우·나가코 교육문화재단 설립

2010년 사천시민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