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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프런티어 해양인 열전 <8> 가덕도 숭어들이 어로장 김관일

물빛만 보고 숭어떼 움직임 읽는다…45년 조업의 신공

  • 김정하 한국해양대 글로벌해양인문학부 교수
  •  |   입력 : 2022-04-25 20:06:35
  •  |   본지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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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덕 전통어업 ‘육수장망’ 계승
- 숭어 민감하고 눈치 빠른 어종
- 소음·기름 냄새 없는 목선 사용
- 총 6척 배로 포위해 잡는 방식
- 흰 거품·적빛 단서로 위치 포착

- 선원 구인난 등에 조업 기계화
- 신공항 개발 추진에 생계 위협
- 전통 어법 보존 위한 대책 필요

바다를 읽는다. 물때, 바람과 함께 물빛을 읽어 숭어 떼를 찾아낸다. 낮에는 물빛에 감도는 연붉은색이나 적갈색, 밤에는 ‘시거리’, ‘희끼’라 부르는 흰 물거품이 단서다. 물빛만이 아니다. “4월 숭어가 눈을 뜨더니 움직임이 빨라졌다.” 보통 사람은 보지 못하는 바다 밑 고기의 눈 매무새와 몸놀림까지 훤히 들여다본다. 부산시 강서구 가덕도에서 ‘육수장망(산과 바다에서 동시 조업)’이라 부르는 숭어들이를 45년간 이끌어온 김관일(79) 어로장의 신공(神功)이다.
부산 강서구 가덕도 ‘내동섬’ 망대에서 김관일 숭어들이 어로장이 어장을 배경으로 서 있다. 김정하 교수 제공
■숭어들이는 숭어와 눈치싸움

숭어들이는 숭어와의 눈치싸움이다. 숭어는 빠르고 날랜 데다 소리와 냄새, 빛에 민감하기가 사람 못지않다. 비린내가 풍기는 밀물이 밀려오면 즉시 오던 길로 되돌아갈 정도다. 그래서 가덕도 숭어들이에는 엔진 소음과 기름 냄새가 없고 바닥을 검게 칠한 무동력 목선을 사용해왔다. 막상 그물에 갇혀도 수면 위로 솟구쳐 오르는 힘이 엄청나 30초 이내에 양망하지 않으면 놓치기 일쑤다. 정약전은 “의심이 많고 민첩한 숭어는 위기에 처하면 흙 속에 몸을 묻고 한 눈으로 동정을 살핀다”는 기록을 ‘자산어보’에 남겼다.

지난 19일 가덕도 ‘내동섬’ 어장에서 선원들이 김 어로장의 지시에 따라 기계식 들망으로 숭어를 잡고 있는 모습. 김정하 교수 제공
김관일 어로장은 가덕도 대항마을에서 어부 김진율과 김선미 사이의 6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네 살 무렵 잠시 이웃 마을 외양포로 이사했다 돌아온 뒤 경기도에서의 군 생활 기간 외에는 줄곧 고향을 지켜왔다. 제대 후엔 숭어배와 멸치배, 데구리배를 10여년 타다가 34세에 주위의 추천으로 ‘조망’이 됐다. 이후 7년간 ‘조망’에서 ‘부망’으로 승급되었고 41세가 돼서야 15대 어로장(‘원망’)이 됐다. 할아버지와 큰아버지에 이어 형님까지 어로장을 지냈으니 집안 내림도 있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 선물을 건네고 집안일을 해주며 배를 타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도 호칭은 ‘망선주’란 높임말 외에도 ‘망지기’나 ‘망인’, 더러는 ‘망쟁이’란 낮춤말도 들어야 했다.

능력 있는 어로장이 되기는 쉽지 않았다. ‘포구나무개’에서 ‘내동섬’까지 6㎞ 남짓한 연안에서 숭어 떼를 발견하는 눈썰미는 물론 숭어의 속성, 목선 배치, 그물 다루는 법까지 두루 능통해야 했다. 네 물부터 열 물까지의 물때와 ‘샛바람’(동풍)이 부는 날 숭어 떼가 출몰한다는 사실도 스스로 깨우쳐야 했다. 숭어를 기다리는 동안의 외로움과 지루함, 졸음 역시 만만찮은 적수였다. 라디오를 벗 삼아 마음을 달래고 잠을 쫓는 법을 익히는 데만 몇 년이 필요했다.

■목선 6척에 나눠 탄 선원 26명 지휘

운반선이 지난 16일 가덕도 대항 포구에서 잡은 숭어를 물차에 옮겨 싣고 있다. 김정하 교수 제공
그리하여 김관일 어로장은 전국 최대의 어획고를 자랑하는 가덕도 육수장망의 계승자가 됐다. 목선 6척에 나누어 탄 26명의 선원을 지휘하던 시절의 그는 카리스마 넘치는 야전 지휘관이었다. “봐라!”하는 호령을 시작으로 숭어가 들어온 입구를 밖목선으로 막고, “어구 당겨라!”며 안목선으로 퇴로를 차단한 다음, “안장등 나오라!”고 포위를 명하고, “뒷배 따르라!”며 밖장등과 안귀잽이, 밖귀잽이를 휘몰아 그물 간격을 좁히는 전술에는 제 아무리 날랜 숭어도 도망칠 재간이 없었다.

‘승정원일기’를 비롯해 ‘난호어목지’ 등 숱한 서적에 맛과 효능이 전해지는 숭어(崇魚)는 수어(秀魚) 치어(鯔魚) 등 이름만 다양한 게 아니라 서로의 고기를 ‘밀치’ ‘개숭어’라 깎아내리는 지역 간 자존심 경쟁도 치열했다. 그런데도 가덕수로에서 자라 맛이 좋은 가덕도 숭어의 명성은 누구나 인정했다. 그 덕에 대항마을에선 공동수익금으로 학교를 짓고 육성회비까지 지원해줬고 봄철 3개월간의 수입으로 한 해 내내 생계를 꾸리는 가정도 많았다. 그런 터라 덜 자란 ‘모치’나 ‘중부리’를 풀어주는 관행을 오랫동안 지켜왔고, 10접(1접은 1000마리)의 숭어를 잡은 날엔 마을에 서낭기를 내걸고 조업을 중단해 바다와 숭어에 감사를 표했다.

■역대 어로장 신위 모시는 풍습

그런 마을에서 살아온 김관일 어로장은 평소 밥 한 수저, 음료수 한 모금에도 ‘고수레’를 잊지 않는다. 그 정성은 ‘할머니 신위’와 1대부터 14대까지 어로장 신위를 모신 사당의 고사에서도 엿보인다. 해마다 길일에 온갖 제수를 진설해 올리는 고사에서도 특히 ‘배선왕(배서낭)’인 ‘할머니 신위’에는 가위와 칼, 화장품, 실패 등 여성용품과 여자 고무신을 바쳐 풍어를 빈다. 지난해 대항마을을 조사한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역대 어로장의 신위를 모셔온 민속에 특별히 주목했다. “생전에 숭어를 잡던 인물이 사후에 어로의 신으로 좌정하는 형태는 한국의 다른 어촌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해양신앙이다.”

올해도 김관일 어로장은 2월 14일부터 7일간의 ‘사개 열기’라 부르는 준비를 거쳐 출어를 시작했다. ‘초살’인 3월에는 새벽 5시 반, ‘중살’인 4월부터는 4시 반에 망대에 올라 매일 12시간 넘게 숭어들이를 해왔다. 기본적 살림살이가 갖추어진 망대에선 63세의 나이에 그에게 도제식 수업을 받는 18대 부어로장 구영명이 곁을 지켰다.

4월 19일 오전 8시 25분, 부처상처럼 묵연히 앉은 자리를 지키던 어로장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어장에 들어온 숭어 떼의 앞머리와 뒤꼬리를 보고 15초 안에 정확하고 담대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날쌔게 망대 2층으로 뛰어 올라간 그가 현란한 손놀림으로 세 개의 레버를 조작하자 280마력의 엔진이 망줄을 감아 100㎡의 그물에 숭어 떼를 가뒀다. 점차 치켜 올라가며 깔때기 모양을 이룬 그물 아래쪽에 숭어가 모이자 어로장은 휴대전화로 작업보조선을 불렀다. 이내 달려온 작업보조선이 그물 밑으로 들어가 ‘후꾸리’(‘이깨수’, ‘조마이’)라 부르는 그물주머니에 숭어를 담아 뒤이어 도착한 운반선 성광 11호에 전달했다. ‘동두리’로 숭어를 어창에 옮겨 실은 운반선은 내쳐 대항포구로 달려가 그곳에 대기하던 물차에 고기를 넘겨주었다.

■선원 구인난에 기계식 들망 등장

배 여섯 척을 동원하던 ‘육소장망(六艘張網)’이 기계식 들망으로 대체된 건 선원의 구인난과 인건비 급증 탓이었다. 그런 상황이 악화하자 통상 반반을 나누던 어촌계와 선원의 수익배분이 선원 80%의 비율로 기운 적도 있었다. 궁리 끝에 관청의 협조를 얻은 어촌계는 어구·어법 관련 법령을 고친 다음 2013년과 2021년 두 차례에 걸쳐 ‘내동섬’과 ‘큰내끝’ 어장에 바지선 세 척씩을 띄우고 기계식 들망을 설치했다. 이후 일정 기간이 지나 수익이 안정되자 어로장을 비롯한 부어로장, 선장, 선원 모두가 어촌계에서 월급을 받게 됐다. 그런데 그처럼 어법이 바뀌자 도리어 어로장 역할이 한층 강화되는 ‘기계화 시대의 역설’이 벌어졌다.

근래 가덕도와 대항마을에선 중첩적인 우여곡절이 진행 중이다. 2001년부터 10여년간 개최한 봄철의 ‘가덕 숭어들이축제’는 2015년부터 겨울철 ‘가덕 대구축제’로 대체되었지만 그마저 코로나19로 중단됐다.

더구나 2021년 대선을 전후해 본격화된 가덕도 신공항 건설계획은 주민의 크나큰 걱정거리다. ‘가덕대항 신공항 생존대책위원회’ 사무실 외벽에 적힌 ‘우리는 가덕도 신공항 반대한다’는 글귀와 실내에 부착된 플래카드 ‘정든 고향 삶의 터전 우리가 지키자’란 표어에서 그런 대항마을 주민들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지역의 고유문화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대규모 개발이 추진된다면 전통 어법이 보존되고 계승될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190년의 가덕도 숭어들이 역사를 45년간 이어왔고 언젠가는 ‘숭어의 신’으로 좌정할 김관일 어로장의 삶을 새삼스레 돌아다보는 까닭이다.

▶도움말씀 주신 분 =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김영석 대항어촌계장, 김경록 전 대항어촌계장, 임성진 강서구청 해양수산과 해양관리계장

※ 공동 기획=국제신문·한국해양수산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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