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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프런티어 해양인 열전 <1> 전경옥 선장

“여자는 배 오래 못 탄다” 편견의 태풍 뚫고 한국 국적선사 첫 女선장의 신화

  • 김정하 한국해양대 글로벌해양인문학부 교수
  •  |   입력 : 2022-01-10 20:07:34
  •  |   본지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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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신(新)해양 시대’를 맞아 ‘해양’의 의미를 재확인하고 ‘해양인’의 존재가치를 부각해야 할 때다. 특히 부산은 ‘해양수도’로서 위상을 높여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의 궤적이 과연 그에 맞춰 이어져 왔는지, 혹여 해양에 관한 인식조차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이지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에 부산을 중심으로 각종 해양수산 관련 현장의 기층민과 실무자, 전문가, 애호가를 찾아 그들 나름대로 해양의 의미와 가치를 지켜온 내력을 ‘소(小) 평전’에 담아 격주로 연재한다. 이를 통해 해양수산 종사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고 자긍심을 고취하는 한편, 해양에 대한 인식 제고와 미래세대를 위해 밝은 전망의 마련에 필요한 키워드를 얻고자 한다.


- 한국해양대 출신 15년차 해기사
- 7만5000t급 자카르타호 이끌어
- 화물·승무원 안전 책임지고 항해

- 어릴적 제복 동경으로 시작된 꿈
- 대학서 고된 해양 훈련 감내하며
- 졸업 뒤 남자 동기처럼 3년 승선
- 잠깐 방황에도 결국 배로 돌아와

- 여성 해기사 승하선 통계 불명확
- 그들 위한 복지정책 고민 필요성

선장은 항해 중이었다. 13쪽에 달하는 질문지를 두 번 주고받은 지난해 말, 15년 차 해기사 전경옥(여·42)은 7만5000t급 컨테이너선 ‘현대 자카르타호’를 몰고 인도양을 건너는 중이었다. HMM 소속 자카르타호는 20피트 컨테이너(1TEU)를 최대 6800개까지 실을 수 있는 대형 선박이다. 부산을 떠나 상하이 싱가포르를 거쳐 나바세바(인도) 카라치(파키스탄)를 들렀다가 다시 싱가포르 항구를 지나 부산으로 돌아오는 56일간의 일정이 빡빡해 보였다. 상상과 짐작만으로도 자카르타호의 위용은 거창하다. 길이 294m에 폭 40m로 축구장 세 배의 넓이에, 수직으로 세워놓으면 서울 여의도 63빌딩보다 48m가 더 높다. 배와 화물의 가격을 합치면 웬만한 기업의 총자산을 훨씬 능가한다.
한국 국적선사 최초의 여성 선장인 전경옥 선장이 인도양을 항해 중인 HMM 소속 현대 자카르타호 위에서 망망대해를 쳐다보고 있다. 이 컨테이너선은 축구장 세 배 넓이에 20피트짜리 컨테이너(1TEU)를 최대 6800개 실을 수 있다. 전경옥 선장 제공
■선장 폭풍·충돌 대비 등 무한 책임

그런 배를 이끌고 선장은 항해한다. 컨테이너 하나마다 화주의 기대와 운명이 담긴 화물 운송을 제의를 치르듯 진중하게 수행한다. 승선 중의 선장은 기상해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일과를 육상과 마찬가지로 ‘나인 투 식스(9 to 6)’로 진행한다. 하지만 체력단련실부터 수영장, 바까지 갖추어진 배 안의 어디에서 무얼 하든 선장의 신경은 오직 선무(船務)에만 쏠려 있다. 망망대해에서 누릴 법한 대자연의 황홀경마저 감상에 빠질까 염려해 일부러 흘려보고 지나칠 정도다. 선원들이 분담한 갑판과 기관실, 브리지 업무를 총괄해야 하는 동시에 언제 닥칠지 모를 폭풍이나 화재, 충돌사고나 해적의 공격 등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선장의 업무에는 시작과 끝이 따로 없습니다. 운항부터 화물, 승무원 안전, 환경오염 방지까지 그 모든 것에 선장은 무한책임을 져야 합니다.”

■제복 대한 동경에 한국해양대 선택

전경옥의 인생 항해는 전북 정읍시 태인면에서 시작됐다. 어머니가 달을 따 치마에 담는 태몽을 안고 전찬국과 김귀이의 1남 4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어릴 적 할아버지 친구의 “바다로 나가면 대성할 팔자”란 말에 “물고기나 잡으란 거냐”며 울던 기억이 훗날 배를 타고 보니 새삼스럽다. 한약방을 운영하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집안이 급속히 기울었지만 아버지의 열렬한 응원을 받는 정주고등학교 전액장학생 전경옥은 환경에 구애받지 않았다. 머지않아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고 노역에 지친 어머니가 병에 걸리고야 비로소 가난이 뭔지 알게 됐다.

그런 전경옥을 지탱해준 건 ‘제복에의 동경’이었다. 여덟 살 무렵 TV에서 본 경찰대학 여생도의 사열 모습에 반해 마음속 깊이 간직해온 꿈이었다. 단 한 번도 ‘여자라 안 된다’는 말을 들어본 적 없고 운동에는 만능이었던 그가 꿈을 드러내자 친구들은 “어울린다! 멋있겠다!”를 연발했다. 하지만 고교 졸업과 함께 지망한 경찰대, 육사 모두 낙방, 재수하고도 다시 낙방…. 낙담해있던 전경옥의 머리에 원서 마감 며칠 전에야 까마득히 잊고 있던 한국해양대가 떠올랐다. 똑같이 제복을 입는 대학이었고, 우여곡절을 거치고도 결과는 “더욱 만족스러운” 오늘이다.

■대학생활, 해기사로 가는 숙성 시간

한국해양대 재학생들이 학내에서 행진하고 있다. 한국해양대 제공
2001년 동기 여학생 18명과 함께 들어선 한국해양대는 전경옥에게 꿈의 숙성 공간이었다. 1991년 첫 번째 여학생 1명이 입학한 뒤 11년이 된 시점이었다. 대학생활을 시작한 전경옥은 제복을 몸에 맞추는 게 아니라 그 소속감과 동질감, 자긍심의 표상에 자신의 몸을 맞추려 애썼다. 적응교육부터 해양훈련, 승선실습, 사관부 활동으로 이어진 4년간의 규율 잡힌 집체교육을 ‘통과제의’로 여기고 감내하면서 훈련을 할 때마다 심장이 터지라 달리며 강인한 체력도 다졌다.

한국해양대 실습선 ‘한나라호’의 예병덕 선장은 말한다. “해기교육은 생활공동체이자 위험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고난과 역경 극복의 능력을 키우는 과정입니다. 선박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다른 사람은 해내지 못할 일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면 저절로 프라이드가 생깁니다.” 그런 해대생의 자긍심을 지켜주기 위해 최근 승선생활관이 ‘자율’과 ‘인권’, ‘민주’를 기조로 마련한 생활교육 혁신안도 주목을 받고 있다.

■졸업과 동시에 3년 승선… 방황

대학 졸업과 동시에 배에 오른 전경옥은 ‘여성 해기사는 승선 기간이 짧다’는 선입견에 맞서 승선근무예비역 혜택을 받는 남자 동기들과 똑같이 3년을 근무했다. 그런데 1항사가 되어 ‘개와 늑대의 구분이 어려운’ 새벽 근무까지 너끈히 감당하게 되었을 무렵, 난데없이 ‘배 타는 이유’에 대한 회의가 찾아왔다. 그 회의는 결국 전경옥을 하선에 이어 육상 근무마저 마다하는 사직으로 내몰았다.

그러나 3년여를 방황하던 전경옥은 결국 “기왕 발 디뎠던 곳에서 답을 찾자”는 생각에 다시 배로 돌아왔다. 그리곤 8년의 온갖 역경을 이겨낸 2019년, 외국 선사의 여성 선장이 된 후배보다는 1년 늦고 일본과는 비슷한 시기에 한국 국적선 최초의 여성 선장에 임명됐다. 그로써 전경옥은 오갈 데 없이 한국 해운업계의 미래를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

■3D 업종과 수출 주역 사이 고민

항해 중인 HMM 컨테이너선 모습. HMM 대외협력실 제공
그러면 과거로부터 오늘날까지의 해기사들은 어떠했나. “수출 물량의 99.7%를 담당하는 한국 해기사들은 ‘한강의 기적’과 ‘K-신화’의 숨은 조역입니다. 1977년 ‘100억 불 수출’을 달성할 무렵에도 당시의 ‘수출 선원’들은 그 마진 액과 똑같은 5억 불의 임금을 외국에서 벌어들였습니다. 이라크전이 한창일 때도 포탄 빗발치는 페르시아만 항해에 뛰어들었고, 최근 국제적으로 치솟는 운임을 마다하고 국내 항구에 기항해 중소기업의 물류난을 해소해준 것도 그들입니다.” 한국해기사협회 이권희 회장의 열변은 상식적 내용인데도 울림이 크다.

다른 많은 해운 전문가는 정체된 임금과 경직된 조직문화, 특히 유럽의 ‘3개월 승선, 3개월 휴가’와 판이한 채 20년째 유지되는 ‘6개월 승선, 2개월 휴가’의 근무 조건이 해기사의 의욕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한다. 급기야 해기사들 스스로 승선 업무를 ‘3D 업종’이라고 자조하기도 한다니, 저간의 공로에 비춰 아이러니도 이만저만 아니다.

그런 현실과 꿈 사이에서 전경옥 선장은 항해를 계속한다. 휴가 중에는 선원과의 상담을 위한 심리학 공부에 몰두하며 각종 강연장과 공연장에 눌러살다시피 한다.

영화 ‘엘 시스테마’를 거듭해 보며 빈민촌 아이들이 음악으로 세상을 바꾸는 기적도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희망을 되살린다. 이따금 시도상선 김학실 팀장과 한국해양대 조소현 교수, 목포해양대 김승연 교수가 주도하는 여성해기사모임에 나가 자신의 경험과 희망을 나눈다.

여성 해기사 문제만은 메일 ID가 ‘완벽주의자(perfectionist)’인 전경옥 선장에게도 언제나 ‘아픈 손가락’이다. 여성 해기사의 평균 승선 기간과 체력에 대한 편견, ‘처녀 항해’ 따위 언사가 여전한 마초적 사회 분위기 때문만이 아니다. 조소현 교수에 따르면 1991년 이래 배출된 여성 해기사 1500여 명은 선사와 해양경찰, 해양수산부 등 도처에 포진해 있고 그중 배를 타는 여성 해기사만도 예비인력을 포함해 237명에 달한다. 그런데도 여성 해기사의 승선과 하선에 대해서는 공식통계조차 명확지 않은 현실인지라, 해기인력 전문가들은 여성 해기사에 대한 교육과 인력 활용, 복지정책이야말로 온 나라가 문명사적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그래서 더욱 전경옥 선장의 존재가 돋보인다. 제주도 신화 속 한라산에 몸을 기대고 바다에 발을 담그던 선문대할망도 바다 건너 육지까지 놓던 다리 공사는 조천 앞바다에서 멈춰야 했다. 자신의 옷을 만들어줄 명주 백통을 제주인이 마련하지 못해서였다. 하지만 오늘날의 여성 선장은 대형선박에 명주 수십만 통을 싣고 오대양을 누비고 다닌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해양DNA’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그에게라면 ‘21세기의 전설’이란 수사가 절대 과분하지 않다.

이제는 그 뒤로 줄줄이 나타날 ‘전경옥 키즈’를 기다릴 차례다. 그들은 선배의 자랑거리였던 고액 연봉과 외국 체험뿐만 아니라 자긍심을 확인하기 위해 배를 탈 것이다. 그리곤 더는 기적과 신화의 숨은 조역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가치를 드러내고 인정받는 해양계의 주역임을 자처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MZ세대는 배를 안 탈 것”이라는 ‘라떼 세대’의 걱정을 한낱 기우로 돌려놓을 것이다. 해운에 명운을 건 나라에서라면 응당 그래야 할 터이다. 때마침 수출액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새해 벽두다.

김정하 한국해양대 글로벌해양인문학부 교수


▶도움말씀 주신 분 = 이권희 한국해기사협회장, 김유택 한국해양대 해사대학장, 예병덕 한국해양대 실습선 ‘한나라호’ 선장, 이상일 한국해양대 승선생활관장, 조소현 한국해양대 교수

※ 공동 기획=국제신문·한국해양수산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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