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현의 오션월드

<22>폐그물에 관한 대책



태평양전쟁 당시 침몰한 일본 선박을 탐사하기 위해 2000년 초 서해 고군산군도 앞바다를 찾았었다. 선박은 1945년 8월 미군 공군기의 폭격을 받아 침몰한 일본 수송선으로 추정되었다. 서해 바다는 수중 시야가 30㎝를 넘지 못한다. 빠르게 흐르는 조류가 바닥면의 개흙을 뒤집어 대니 바다 전체가 흙탕이 되기 때문이다. 바닥을 더듬으며 기어가는데 무언가 손에 만져졌다. 전해지는 느낌이 그물이었다. 50년 넘는 세월 동안 서해 바다를 떠돌던 폐그물이 쌓이면서 선박은 거대한 그물 덩어리로 변해있었다. 조류에 떠밀린 채 이리저리 흔들리던 폐그물의 흐느적거림은 저승사자의 손길처럼 느껴졌다.

바다에서 폐그물을 만나는 것은 달갑지 않다. 특히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바닷속에서 몸이 그물에 엉키기라도 하면 벗어나기 만만치 않다. 폐그물은 바다를 찾는 사람에게 위험한 존재이지만 물고기에는 죽음의 덫이 된다. 폐그물에 갇힌 물고기는 그곳을 벗어나지 못한 채 죽어서 썩어 들고 이를 포식하기 위해 물고기가 그물 안으로 들어가 갇히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를 두고 유령어업이라 한다. 유령어업으로 인한 수산업 피해는 연간 1800억 원 으로 추산된다. 폐그물은 수산업에 피해를 줄 뿐 아니라 바다 오염이라는 더 큰 문제를 불러온다. 폐그물 안에서 죽어 부패하는 물고기가 바로 직접적인 오염원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바닷속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바다정화작업에 나선 스쿠버다이버가 폐그물을 살펴보고 있다.

	유실된 폐어구에 갇힌 물고기 모습. 장기간 방치되는 물고기는 이곳에서 최후를 맞아 부패될 것이다,

	베도라치 한 마리가 유실된 통발에 갇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물 재료는 합성수지인 나일론이 대부분이다. 과거에는 면사를 썼지만 1970년대를 기점으로 대량 생산을 통해 공급된 나일론으로 바뀌게 되었다. 나일론 등 합성수지가 원료인 그물의 수명은 반영구적이지만 조업을 하다 보면 엉키거나 끊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실제 그물의 평균수명은 짧게는 3개월, 길게는 2~3년 정도로 봐야 한다. 2002년 국립수산과학원의 동·서·남해안 실태조사 결과에 의하면 연안 통발과 자망어구는 연간 사용량의 50%가, 근해통발과 자망어구는 20~30%가 바다에서 유실된다고 한다. 어림잡아 연간 5000ｔ정도 되는 엄청난 양이다. 이들 폐그물은 시간이 지나면서 잘게 쪼개져 미세플라스틱으로 변한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크기의 미세플라스틱은 어패류 등의 호흡 및 먹이활동을 통해 체내에 흡수 된 후 인간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온다. 자연에 있는 어떠한 생명체도 미세플라스틱을 분해할 수 없다.

	질량보존의 법칙은 바닷속도 예외가 아니다. 방치된 폐그물과 폐어구 등은 시간이 지나면서 마모되고 잘게 쪼개져 미세플라스틱으로 변하게 된다.

바다에 유실되는 폐그물은 수거만 되면 피해를 줄일 수 있겠지만 넓고 깊은 바다를 떠돌거나 가라 앉아 있는 그물을 100% 수거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전국 각지에서 스쿠버 다이빙 동호인을 중심으로 폐그물 수거 및 바다 정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버려지는 양을 생각하면 이들의 활동은 바다 살리기라는 계몽적 차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 어업 활동 도중 어쩔 수 없이 버려지는 그물이라면 바다에서 녹아 없어지면 되지 않을까. 인식의 전환은 개발로 이어졌다. 국립수산과학원은 2002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바닷물에 분해되는 생분해성 수지로 만드는 그물 개발에 착수했다. 개발 초기 일반 나일론 그물에 비해 강도가 떨어지는 등 실용화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2007년부터 실용화 단계에 들어갔다. 세계 최초이며 국제출원 3건 등 7건의 특허를 출원 또는 등록했다. 생분해성 그물은 유실되더라도 2~5년 정도가 지나면 바닷물에 완전 분해되어 없어진다. 나일론 소재보다 1.6~2배 정도 비싼 가격이 관건이다. 정부의 정책적 결단과 이에 대한 어민들의 관심이 폐그물로 인한 환경오염 및 미세플라스틱을 줄일 수 있다. 박수현 기자 parksh@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