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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준 편집국장 신문은 지식의 숲 <10> 엑스포②-발터 벤야민의 비판적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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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030 부산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 유치위원회 사무처 실무를 총괄할 사무총장에 산업통상자원부 박정욱 투자정책관이 선임(국제신문 8월 16일 자 2면 보도)돼 부산 유치 활동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사무처의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이 뒷받침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함께 부산시 국제관계대사로 임명된 박은하 전 주영국대사(국제신문 8월 19일 자 2면 보도)도 외교 네트워크를 활용해 유치에 힘을 보탤 것으로 보입니다. 박 대사는 여성 최초 외무고시 수석 합격, 여성 최초 주영국대사 임용 등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닌다고 합니다.

   
국제신문 8월 19일 자 2면 기사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파사젠베르크)


지난 회에서 우리나라 엑스포 참가 역사를 다룬 데 이어 이번 회에서도 엑스포와 관련된 두 번째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독일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발터 벤야민(1892~940)이 초기 엑스포를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소개하겠습니다. 초기 자본주의가 태동하던 시기라 비판적 시각이 강합니다. 필자가 대학원에 다닐 때 실천하는 도시사회학자로 평가받는 고(故) 윤일성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님의 ‘도시문화연구’ 수업 시간에 함께 읽었던 수잔 벅 모스가 쓴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문학동네)를 책장에서 꺼냈습니다.

   
아케이드 프로젝트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






















아케이드는 상점가 등의 보도(인도) 위에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쇼핑할 수 있게 차양이나 비를 막기 위한 아치 모양으로 설치되는 시설을 말합니다. 이 책은 프랑스 파리로 망명한 발터 벤야민이 쓴 미완의 저작 『파사젠베르크』(아케이드 프로젝트라는 뜻)에 관한 소개서입니다. 벤야민의 ‘파사젠베르크’는 19세기 파리에 형성되던 산업문화에 대한 엄청난 분량의 메모 모음입니다. 아케이드를 어슬렁거리는 만보객, 창녀, 가스등, 지하철, 도로 표지판, 유겐트 양식, 권태, 도박, 매춘, 유행, 프루스트, 보들레르…. 한글로 번역된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1, 2』(새물결) 분량은 자그마치 5000쪽에 달합니다.

벤야민은 아케이드로부터 사람들의 집단무의식과 소망, 신화와 알레고리, 변증법적 이미지를 읽어냈지만, 이 글에서는 박람회에 관한 내용에 국한하겠습니다.


●상품의 환등상 제공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저자는 벤야민의 엑스포에 관한 생각을 “만국박람회에서 상품 거래에 우선하는 기능은 자본주의적 민간 축제로서 사람들에게 환등상을 제공하는 것”(120쪽)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환등상(판타스마고리아, Pantasmagorie)이란 18세기 말 발명된 것으로, 영화가 탄생하기 이전에 유럽 전역에서 인기를 얻은 감각적 시각매체를 말합니다. 불투명한 스크린을 설치하고 각종 색깔의 빛을 투사해서 환상적인 형태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수증기에 빛을 투사하면 스크린에는 유령이 나타나고 무대 위의 연극의 주인 공인 기사와 칼싸움도 할 수 있습니다. 벤야민은 환등상에 대해 파노라마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광경을 관객의 눈앞에 펼쳐 보임으로써 전 세계를 가속도로 지나가는 듯한 환상을 제공한다고 설명(116쪽)합니다. 쇼윈도로 이루어진 거리를 지나가는 경험과 일치한다고 부연 설명합니다.

책 내용으로 조금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파라는 최초의 만국박람회가 열린 곳은 아니지만, 가장 성대한 만국박람회들을 주최한 곳이다. 파리 최초의 만국박람회는 1855년 “거대한 유리 지붕” 아래에서 열렸으며, “유럽 전체가 상품들을 구경하러 몰려들었다.” 1867년에 개최된 다음번 파리 박람회의 건축물은 콜로세움에 비견되기도 했다. “눈앞에 서 있는 거대한 건축물은 다른 행성, 이를테면 목성이나 토성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취향에 맞도록, 아직 우리 눈에 익지 않은 색으로” 지어진 것처럼 보였다. 1889년과 1900년의 박람회는 도시 경관에 영구적인 흔적을 남겼다. 그랑 팔레, 트로카데로, 그리고 파리의 표식인 에펠탑이 그것이다.’(118쪽)



   
1851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만국박람회 전시장으로 세워진 수정궁은 철골과 유리로 만들어졌붓다. 사진 게티이미지


지크프리트 기디온은 박람회의 진열품을 종합예술작품(Gesamtkunstwerke)에 비견했습니다. 기계 테크놀로지와 미술 갤러리, 군용 대포와 유행 의상, 사업과 쾌락을 하나의 현혹적인 시각 경험으로 종합하는 환등상의 속성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입니다.

●“비길 데 없는 동화 같다”

최초 만국박람회가 1851년 영국 런던에서 개최됐을 때 그 유명한 수정궁(Crystal Palace) 등을 본 사람들은 박람회가 “비길 데 없는 동화 같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수정궁은 한 세대의 유럽인 전체가 상상하는 환상 세계 속에서 옛 자연과 새 자연을 혼합했다고 저자는 표현합니다. 수정궁에는 펌프와 피스톤뿐 아니라 야자수 같은 나무도 112피트 높이의 유리 지붕에 덮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 줄리어서 레싱은 1900년 이렇게 회상합니다. “나는 어린 시절에 수정궁 소식이 독일까지 전해졌던 것, 외딴 지방 도시에 사는 부르주아들의 방 안에는 수정궁 사진이 걸려 있던 것을 기억한다. 유리관 속의 공주님이나 크리스털로 만든 집에 사는 여왕님과 요정들이 나오는 옛날 동화에서 우리가 상상한 모든 것이 거기서 구현되는 것처럼 보였다.”(118쪽)

●정치의 환등상 제공

상품의 환등상 못지않게 정치의 환등상도 만국박람회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산업과 테크놀로지는 미래의 세계 평화와 계급 화합, 풍요를 자체적으로 산출할 수 있는 신화적 힘으로 제시되기 때문입니다. 만국박람회라는 동화의 나라가 전해주는 메시지는 대중을 위한 혁명 없는 사회 진보의 약속이라고. 생산수단의 진보와 세계 경제의 무질서(위기와 실업) 사이의 괴리가 커질수록 자본주의적 민간 축제에 대한 필요도 커졌다는 게 벤야민의 분석입니다. 이런 축제를 통해 자연발생적인 역사적 진보의 신화를 영속화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적 교훈을 습득하는 것으로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국가 발전 진열장

19세기 후반에 만국박람회는 대중의 경탄을 자아내는 유토피아적 동화의 나라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언제나 지난번보다 장대하고 보다 많은 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이런 유토피아적 목표의 실현으로 나아가는 역사적 진보의 가시적 증거를 보여주는 경쟁도 치열했다고 합니다. 만국박람회는 순수 민간사업으로 출발했으나 1900년에 오면 이미 각국 정부가 깊숙이 개입해 국가 전시장은 새로운 제국주의 일부로서 국가의 위용을 홍보하고 애국심 자체를 진열하는 상품으로 변형됐다는 게 벤야민의 견해입니다. 만국박람회는 정부에 판매할 최신 전쟁 무기를 진열하는 동시에 세계 평화를 홍보하는 역할을 자임한다(124쪽)고. 상당히 역설적입니다.

●아케이드, 상품자본주의 원조·백화점 전신

이 책의 핵심인 아케이드에 관해서도 잠시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벤야민은 “파리 아케이드는 ‘백화점의 전신’이고 진열된 상품의 환등상은 만국박람회에서 절정에 달한다”고 분석합니다. 특히 아케이드는 ‘상품자본주의의 원조 신전’이라고 표현합니다, 아케이드는 동화 속 동굴처럼 제2 절정기의 파리를 환하게 비췄다고. 아케이드 안에 있는 불경스러운 유흥가는 요리의 완성도와 취하게 해주는 음료와 일하지 않고 돈을 벌게 해주는 룰렛 바퀴와 보더빌 극장의 춤과 노래를 가지고 행인들을 유혹한다고 합니다.

●보여주기보다 차별화…개발원조 노하우 공유

2030 부산 엑스포를 유치해야 하는 시점에 엑스포에 관한 비판적 시각을 소개한 것은 엑스포에 관한 다양한 관점을 알고 보여주기식 외형에 치중하기보다 내실을 꾀하고 차별화된 부산만의 엑스포를 고민하고 기획하자는 취지입니다. 엑스포를 바라보는 관점을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다양합니다. 어쨌든 부산시가 준비하고 있는,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탈바꿈한 전 세계에서 유일한 대한민국의 개발원조 성공사례를 개발도상국, 제3세계와 알차게 공유한다면 역대 어느 엑스포보다 콘텐츠가 풍부하고 울림 있는 행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letitbe@kookje.co.kr



   
국제신문 8월 16일 자 9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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