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와 유럽 간 해상물류 동맥인 이집트 수에즈 운하 사고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국내 최대 원양 컨테이너 선사인 HMM이 선박 4척을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 노선으로 우회하기로 했다. 수에즈 운하가 막혀 희망봉 노선으로 돌아가는 것은 1975년 이후 46년 만으로 알려졌다.

　28일 HMM과 해운업계 등에 따르면 HMM은 이번 주 수에즈 운하를 지날 예정이었던 2만4000TEU급 ‘HMM 스톡홀롬호’와 ‘HMM 로테르담호’, ‘HMM 더블린호’와 5000TEU급 부정기선 ‘HMM 프레스티지호’의 남아공 희망봉 우회를 결정했다. 로테르담호와 더블린호, 프레스티지호는 유럽에서 아시아로, 스톡홀롬호는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중이다. 단 우회하던 중이라도 운하 통행이 빨리 재개된다면 다시 운하를 통과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23일 수에즈 운하에 가장 먼저 도착해 대기해 있던 2만4000TEU급 ‘HMM 그단스크호’는 인근 해상에 나흘째 대기 중으로 알려졌다. HMM은 다음 달 중순까지 모두 10척의 선박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스케줄(국제신문 지난 26일 자 4면 보도)로 운항 중이다. 현재 수에즈운하를 통한 아시아~유럽 항로를 운항하는 국내 컨테이너선사는 HMM이 유일하다.

　이번 우회는 HMM이 가입한 세계 3대 해운동맹인 ‘디얼라이언스’와의 협의 끝에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디얼라이언스’ 회원사인 독일 선사 하팍로이드 홈페이지에도 HMM 소속 선박들이 우회를 결정했다는 공지문이 올라와 있다.

　HMM 선박들이 희망봉을 돌게 되면 약 9000㎞를 더 항해해야 해 소요 기간이 7일~10일 가량 더 걸린다. 수에즈 운하 통행료가 2만4000TEU 급의 선박일 경우 약 110만 달러(약 12억 원) 가량이지만 시간과 운송비용 절감 등을 위해 모두 이곳을 통과하고 있다.

　수에즈 운하 개통 이후 해운업체들은 희망봉 노선을 잘 이용하지 않았지만 1967년부터 8년간은 다시 희망봉 항로를 이용했다. 당시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 ‘6일 전쟁’으로 수에즈 운하를 사이에 두고 양군이 대치했고 1973년 ‘욤 키푸르 전쟁’ 당시에도 맞서면서 1975년에야 재개통됐다. 해운업계 관계자들은 수에즈 운하가 막혀 희망봉 노선으로 우회하는 것은 이후 처음이라고 전했다.

　HMM 관계자는 “희망봉으로 우회하면 최대 10일 가량 더 걸리지만 선복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논의했다. 희망봉으로 돌아가더라도 예상보다 빨리 운하가 뚫리면 배를 다시 돌릴 수 있다”고 밝혔다.

　수에즈 운하 사고 복구가 지연되면서 유럽 항로 해상 운임이 한 달여 만에 반등했다. 지난 26일 전 세계 컨테이너선의 운임지표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에 따르면 유럽 항로 운임은 이날 TEU(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 1개)당 3742달러를 기록했다. 전주 대비 77달러 오른 것으로 5주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업계에서는 사태가 조속히 해결되지 않을 경우 운임이 더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임은정 기자 iej09@kookje.co.kr

	지난 22일 부산항을 출발해 유럽 노선에 투입된 1만6000TEU급 신조 컨테이너선인 ‘HMM 누리호’. HMM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