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년전 국제산업물류도시 추진도
- 연구개발특구 편입·민원에 무산

- 정화시설 갖춘 산단 입주업체
- 부산 531곳 중 125개사 24%
- 화학물질관리법 규제에 고충
- 업체들 이전 고민, 착수한 곳도

부산 ‘표면처리 집적화 단지’ 조성 계획이 6년째 표류하고 있다. 환경 규제 강화로 이들 업체가 부산을 떠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지역 제조업의 근간인 뿌리산업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6일 오후 부산 강서구의 한 표면처리업체에서 직원이 작업을 하고 있다. 부산표면처리협동조합 제공

6일 부산시와 부산표면처리협동조합에 따르면 최첨단 표면처리 집적화 단지 조성사업은 현재 부지를 물색하는 상황이다. 6년 전 계획했던 시범단지 조성계획이 무산됐고 새로운 장소를 결정하는 데만 수년이 걸리자 업계의 불만과 불안감은 증폭되고 있다.

시는 2014년 6월 강서구 국제산업물류도시 1-2단계 8공구 21만5000㎡(약 6만5000 평)에 최첨단 표면처리 집적화 단지를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업계의 요청에 따라 시는 산업부와 9차례에 걸쳐 타당성을 놓고 협의한 끝에 계획을 확정했다. 당시 녹산산단과 사상·사하구에 흩어진 150여 표면처리업체가 입주해 약 6000억 원의 생산을 유발하고 7000여 명의 고용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환경 오염과 그에 따른 지가 하락 등을 우려한 인근 주민과 입주 기업의 반발에 부딪혔다. 또 해당 부지가 2016년 연구개발특구로 편입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경제자유구역 내 연구개발특구는 표면처리업을 유치할 수 없도록 한 규정 때문이다. 결국 집적화 단지가 들어서기로 예정됐던 부지에는 첨단 자동차 부품 융합 클러스터가 들어서기로 결정됐다.

집적화 단지 조성이 무산된 이후 업계는 부산뿌리산업발전위원회 등을 통해 논의를 진행 중이지만 아직 확정된 사항은 없다. 시 관계자는 “여러 대체 부지를 알아보는 과정이다. 타당성 검토와 용역 등을 거쳐야 해 아직 발표하기는 이른 단계”라고 설명했다.

표면처리는 부산에서 태동한 대표적인 뿌리산업이다. 부산에 전국 4위 규모인 531개사가 자리 잡아 1만여 명의 종사자를 고용해 연간 1조7000억 원대의 매출을 올린다. 하지만 공동폐수처리장 등 정화시설을 갖춘 집적화 단지에 입주한 업체는 125개로 전체 업체의 24%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곳곳에 흩어져 폐수 및 매연 처리를 개별 위탁한다.

2015년부터 시행된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에 따라 각종 규제가 늘어나면서 개별 업체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조합 관계자는 “기준에 맞는 시설을 갖추고 싶어도 예산·부지 부족으로 과징금을 내거나 완성제품을 길거리에 보관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은 집적화 단지가 만들어진다는 기대감마저 줄어들어 안타깝다”고 전했다.

집적화 단지 조성이 표류하면서 지역 뿌리산업 업체들의 ‘엑소더스’도 우려된다. 조합 측은 많은 기업이 규제를 피해 타 시·도로 이전을 고민 중이고, 실제 다른 광역시로 옮겨가기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한 업체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문식 조합 이사장은 “타 지자체는 물론이고 베트남과 미국 등 해외에서도 러브콜이 많지만 부산에서 시작해 기반을 둔 만큼 지역에 남으려는 업체가 대부분이다. 이들이 더 고민하지 않도록 시에서 빨리 움직여 해결책을 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 뿌리산업

주조 금형 소성가공 용접 표면처리 열처리 등 6개 업종. 조선·해양기자재, 자동차 산업 등 제조업의 필수 공정기술. 부품의 틀을 만들어 모양에 맞춰 생산하고 최종 제품의 겉면을 사용하기 좋게 물리·화학적 방법으로 처리하는 과정 등을 포함.

배지열 기자 heat89@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