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사용 우려 없어” 밝혔지만

- 국제여론 의식한 ‘명분쌓기’

- 정부, 백색국가 日제외 유보

- “구체적인 방법·시기 논의”

지난달 4일 대한국 수출 규제를 단행한 일본 정부가 반도체 관련 3개 핵심 품목 중 1개 품목의 수출 신청을 한 달여 만에 허가하면서 정면 충돌 양상으로 치닫던 한일 ‘경제 전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의도를 면밀히 파악하는 한편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대응 수위를 조절하기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8일 “일본 경제산업성이 (지난달 4일) 한국에 대한 1차 수출 규제 품목으로 지정했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 가운데 ‘포토레지스트’ 수출 1건을 전날(지난 7일) 승인했다”고 밝혔다. 포토 레지스트는 반도체 기판에 바르는 감광액으로, 삼성전자가 주로 들여오는 품목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이날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일본이 (수출 규제 단행 이후) 34일 만에 대한국 수출을 처음으로 허가했다”고 알렸다.

따라서 해당 품목은 당장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반도체 기업에 공급할 수 있게 됐다. 일본이 승인을 결정하지 않았다면 이 품목은 지난달 4일 ‘개별 허가’ 대상으로 지정된 탓에 수출 신청부터 경제산업성의 승인까지 90일이 걸릴 예정이었다.

경제산업성은 승인 결정을 내린 것과 관련해 “한국으로 수출됐을 때 군사용으로 전용될 우려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정부와 업계를 중심으로 일본이 ‘명분 쌓기’ 작전에 나섰을 가능성도 배제하지는 않고 있다. 자국의 수출 규제 조처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 징용 판결에 따른 ‘경제 보복’이 아니라는 인식을 국제사회에 심어주기 위한 일종의 연막 작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일본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앞으로 진행될 상황을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불확실성이 여전한 만큼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말했다.

일본이 속도 조절에 나선 듯한 모습을 보이자 우리 정부도 ‘상응 조치’의 단행을 잠시 유보했다. 정부는 이날 관계장관 회의를 열어 한국의 백색 국가 명단에서 일본을 제외하는 방안을 논의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확정하지는 않았다. 애초 정부는 이날 회의 직후 백색 국가 제외 방법과 구체적인 대일 제재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이 총리는 “일본의 경제 공격이 원상회복될 수 있도록 외교적인 노력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일본의 조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불확실성이 여전해 일본이 ‘백색국가(화이트 리스트)’ 배제 조처를 조속히 철회해야 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이석주 기자 sereno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