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산그룹은 매출액 40조 원 규모를 자랑하는 중국 청산그룹과 국내 합자법인(GTS)을 만들어 부산 강서구 미음산단에 스테인리스 냉간압연 공장 설립(국제신문 지난달 31일자 14면 등 보도)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일부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철강업계가 저가의 철강 제품이 국내에 들어오면 국내 시장을 잠식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반발 때문에 투자가 미뤄지고 있다. 스테인리스 냉간압연을 중심으로 한 국내 철강업계의 현실을 21일 길산그룹 영업본부그룹 김준희(38) 부장을 만나 들어봤다.

	길산그룹 김준희 부장이 스테인리스 냉간압연 공장을 부산에 신설, 수출의 전진기지로 삼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전민철 기자

-부산공장 설립으로 저가·저품질 철강 제품이 공급된다는 우려가 있다. 이런 논란 속에서도 공장을 설립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오해의 소지가 많은 부분이다. 포스코 등 대기업은 당연히 LNG 선박과 자동차 등에 들어가는 고부가가치 철강 제품에 상당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스테인리스 냉간압연은 고부가가치 분야가 아닌, 범용 기술로 제작되는 분야다. 따라서 품질 인증 자체도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에 따르는 것으로, 청산그룹이 생산하는 스테인리스 냉간압연 제품 역시 국제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 품질이 낮다는 것은 일부의 주장일 뿐이며 오히려 낮은 가격으로 제품을 국내에서 만들어 공급하는 게 더욱 생산적이다.

-국내 철강업계가 반발하는 이유는.

▶스테인리스 냉간압연은 이미 공급 과잉 상태다. 특히 이 부문의 국내 생산 설비는 30년 이상됐다. 보통 20년 단위로 설비를 교체해야 하는 시기를 지났다. 인도네시아 등 스테인리스 냉간압연을 생산하는 공장은 기존 노후 설비를 신규 설비로 교체하며 생산을 진행 중인데, 한국은 노후 설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신규 설비를 들이는 방식으로 생산해 공급 과잉 상황을 맞았다. 결국 기계 장비에 관한 구조조정 시기를 놓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저가 제품이 공급되면 이들의 설비 구조조정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에 반발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고부가가치 산업이 아닌, 범용 기술 부문에 투자를 진행하는 것에 의문이 든다. 인건비 상승 압력 등 국내 경영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투자를 진행하는 데 대해서도 설명이 필요한 것 같다.

▶스테인리스 냉간압연에 대한 수입이 올해부터 급속히 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통계 자료를 분석한 결과, 국내 스테인리스 강 수입은 2005년께 1만ｔ을 돌파한 뒤 2013년 2만ｔ을 넘어선 뒤 현재 4만ｔ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매우 가파른 성장세다. 그만큼 수출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데, 2005년 이전 2만~4만ｔ 사이에서 이뤄지던 수출이 현재 5000ｔ 수준에 불과하다. 철강산업은 대규모 장치 산업으로, 인건비 비중이 높지 않다. 노후 설비를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스테인리스 냉간압연 부문의 경쟁력을 상실했다고 볼 수 있다.

-부산공장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길산그룹의 본사 기능을 부산으로 이전한다. 국내 스테인리스 냉간압연 제조사는 4자(1.2ｍ) 폭을 생산하는데, 전 세계적으로 요구하는 제품의 폭은 5자(1.5ｍ)다. 제품 불량률이 낮기 때문이다. GTS 부산공장은 5자 제품을 생산해 수입을 전량 대체하고, 남은 것은 수출할 계획이다. 유럽 일부 국가와 중동, 동남아 시장을 공략할 방침이다. 특히, 이 제품을 생산하면 미국이 25%라는 고율의 관세를 매기더라도 가격 경쟁력이 충분해 이익이 남는다. 부산을 선택한 이유는 제품 수출에 적합한 항만 컨테이너 인프라가 매우 좋기 때문이다.

-부산시에 바라는 점은.

▶청산그룹은 중국 내 100위 안에 드는, 총 매출 43조 원을 자랑하는 곳이다. 길산그룹의 지난해 매출은 4000억 원 수준이었다. 본사 기능을 이전해 신규로 500명을 뽑을 예정인데, 수입산을 대체하고 수출을 진행하며 규모를 키우는 전략을 세워 지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산업계의 반박 논리에서 벗어나, 투자 협약에 관한 빠른 결정을 내려 신뢰를 쌓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민건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