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주권 행사로 총수퇴출 첫 사례

일가족 갑질로 국민적 비난을 산 조양호(70) 한진그룹 회장이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경영권을 잃었다. 최근 한층 강화된 주주권 행사에 따라 대기업 총수가 경영권을 잃는 첫 사례로 기록됐다.

	대한항공 주주들이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빌딩에서 열린 제57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의장을 맡은 우기홍 대표이사(부사장)에게 의사진행 발언을 요청하며 항의하고 있다. 주주들이 이날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을 부결시킴으로써 조 회장은 대한항공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지 20년 만에 대한항공 이사직을 잃게 됐다. 연합뉴스

대한항공은 27일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 빌딩 5층 강당에서 제57기 정기 주주총회를 열어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 등 4개 의안을 표결한 결과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이 부결됐다고 밝혔다. 이 안은 찬성 64.1%, 반대 35.9%였지만 대한항공 정관은 ‘사내이사 선임은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규정해 통과되지 못했다. 이로써 조 회장은 1999년 아버지 고(故) 조중훈 회장에 이어 대한항공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지 20년 만에 대한항공 이사 자리를 잃게 됐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경영권 박탈은 지난해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이른바 ‘물컵 갑질’이 도화선이 됐다. 2014년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한진가는 잠시 자숙의 시간을 보내는 듯했지만 다시 공분 대상이 됐다.

한진 오너 일가가 각종 위법 혐의로 경찰 검찰 세관 공정거래위원회 국토교통부 등 국가기관의 조사·수사 대상이 됐고, 조 회장의 아내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과 두 딸이 포토라인 앞에서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조 회장 역시 총 270억 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연임안 부결은 지분 11.56%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면서 가능했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사태를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일부 전문가는 “잘못된 경영을 바로잡은 자본시장의 촛불혁명”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정옥재 기자 littleprinc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