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표 IT산업단지인 화창베이
- 스타트업·개인 창업 생태계
- 완벽에 가까운 시스템 구축
- 컨설팅·사업 성공 때까지 지원
- 초등생도 교육 … 흥미 심어줘

4차 산업혁명의 원동력은 최첨단 ICT(정보통신기술)다. 인공지능(AI) 등의 기술 수준은 이제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기준이 됐다. 이 때문에 상당수 국가 및 기업은 ICT 개발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춰 전략을 세운다.

하지만 쉽게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ICT 수준이 아무리 높아도 인재 양성 시스템과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육성 인프라 등이 취약하다면 창업 활성화로 이어지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창업 활성화 여부는 4차 산업의 질적 수준을 결정짓는 핵심 잣대다. 본지는 창간 70주년 기획시리즈 ‘눈앞에 온 미래, 4차 산업혁명 시대’ 여덟 번째 순서로 아시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국 선전(Shenzhen)의 창업 시스템과 스타트업 성장의 원동력, 한국에 주는 시사점 등을 현지 취재를 통해 알아 봤다.

	중국 선전 중심가 ‘화창베이’ 전자상가의 메인 거리.

■‘창업 천국’ 화창베이

중국 광둥성 남부에 있는 신흥 산업도시 선전. 부산 면적(770㎢)보다 약 2.5배 큰 이곳(1953㎢)은 베이징·상하이·톈진과 함께 중국의 4대 도시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혁신도시다. 전체 인구(1200만 명 추산)의 평균 연령이 30대일 정도로 젊고 활기가 넘치는 지역이다. 화웨이와 텐센트 등 중국의 주요 IT 기업 본사가 위치한 개혁·혁신의 1번지이기도 하다. 미국의 금융정보업체 ‘샌퍼드 번스타인’은 지난 9월 “2018년 선전의 GDP(국내총생산)가 3500억 달러를 기록하며 홍콩(3450억 달러)을 처음으로 추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1970년대만 해도 인구가 2만 명에 불과했던 어촌 마을 선전이 이처럼 눈부신 발전을 거듭한 데에는 수십 년간 고부가가치형 산업으로 전환하려는 중국 당국의 개혁 시도가 있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그 결실은 중국 내 ‘창업 천국’으로 자리잡은 화창베이로 맺어졌다. 화창베이는 선전 중심가에 있는 전자상가 밀집 지역이자 중국의 대표적인 IT 산업단지다. 단순히 외형적으로만 보면 서울의 용산 전자상가와 유사하다.

그러나 화창베이는 전 세계의 다른 IT 단지와 차별화된 특징을 갖고 있다. 완벽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스타트업과 개인 등을 위한 창업 생태계가 제대로 갖춰졌다. 화창베이에서 가상현실(VR) 기기 등을 판매하는 한 업체 대표는 “(화창베이 내에는) 아이디어만 갖고 기술형 창업에 나선 업체나 개인이 많다. 이는 화창베이의 발전과 유통 시스템의 혁명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화창베이 내 업체들은 물건을 판매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스스로 제품을 만들기까지 한다. 또 QR 코드(격자 무늬의 매트릭스 형식 코드) 등을 활용해 자사 제품을 전 세계 고객에게 유통시킨다. 외국인이 현장에서 제품을 구매하지 않아도 가게 입구에 있는 QR 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은 뒤 자국에서 주문하면 바로 배달되는 시스템이다. 창업 활성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이런 혁신형 아이디어는 탄생하지 않았다는 게 현지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창업 인큐베이팅 시스템 가동

	메이커 스페이스 ‘X.factory’에 있는 교육용 공장 자동화 기기.

여기서 주목할 부분이 있다. 메이커(Maker)가 화창베이의 창업 생태계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메이커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갖고 제품·서비스를 창작하거나 개발하는 사람을 말한다. 통상 ‘혁신 창업자’로 불린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메이커가 주목받는 것은 창업 활성화의 새로운 동력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 2일 ‘혁신창업 생태계 조성방안’을 발표하면서 “창업 아이디어를 사업화할 수 있도록 ‘메이커 스페이스’를 2022년까지 전국에 367곳 만들겠다”고 밝힌 것도 메이커의 중요성을 인식한 결과로 분석된다. 메이커 스페이스는 말 그대로 메이커들이 창업을 준비하기 위해 교육을 받거나 아이디어 공유와 사업 구상 등을 하는 장소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직접 만들 수도 있다.

화창베이의 창업 생태계는 이러한 시스템을 완벽하게 갖췄다. 화창베이 내 주요 메이커 스페이스인 ‘세그메이커’(Segmaker)에서는 우수 인재에 대한 컨설팅부터 실제 창업에 이르기까지 메이커를 위한 인큐베이팅(육성)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세그메이커 측은 메이커가 창업 이후 수익을 올리면 인큐베이팅 인프라 제공에 따른 대가로 그 수익의 10%를 받는다. 창업에 나서는 메이커와 창업 전반을 지원하는 곳이 서로 ‘윈윈’하는 셈이다. 세그메이커의 제이 양(Jay Yang) 오퍼레이션 매니저(운영 관리자)는 “평균 인큐베이팅 기간은 6개월 정도”라고 설명했다.

■학생에게도 ‘창업 관심 유도’ 교육

메이커 활성화를 포함한 선전의 창업 생태계는 또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당장 사업을 시작하려는 성인뿐 아니라 어린이를 포함한 학생들에게도 창업의 중요성과 흥미를 심어주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세그메이커에서는 기자가 방문한 지난 10일만 해도 자국 및 해외에서 온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화창베이에 대한 설명과 교육 등이 이뤄졌다. 이는 30대에 불과한 선전 거주자들의 평균 연령 등 도시의 특성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11일 선전 기술전문학교에서 열린 ‘메이커 페어 선전 2017’에서도 어린 자녀와 함께 나온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이 상당수를 차지했다.

중국 선전=이석주 기자 serenom@kookje.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