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해지는 글로벌 물류 전쟁 속에 선진 PA(항만공사·Port Authority)들이 물류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반면 한진해운의 파산으로 부산항의 경쟁력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부산항만공사(BPA)는 정부의 규제에 묶여 무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BPA의 자율경영을 가로막는 정부 규제를 풀고, 글로벌 물류기업으로 길을 터줘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본지는 해외 선진 PA를 방문해 그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게 됐는지를 짚어보면서 부산항만공사의 나아갈 방향을 찾는 기획기사를 마련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인 권양숙 여사가 2004년 1월 16일 중앙동 옛 풍고빌딩에서 열린 부산항만공사 창립 기념 현판 제막식에 참가해 축하하고 있다.

- 13년째 부두임대 역할 머물러
- 한진사태 물류대란 때도 무기력
- 정부 반대하면 사업 추진 못해
- 해외 PA 비해 경쟁력 뒤처져

- 싱가포르 PSA·상하이 SIPG 등
- 글로벌 물류기업으로 변신중
- “법 만들더라도 규제 벗어나야”

장면1. “뉴욕 뉴저지항의 대형 컨테이너선 통과를 위한 베이욘 브리지 증축 공사는 PA 내 여러 사업부가 토론을 통해 결정된 사례다. 당초 TB&T(터널교량) 사업부에서는 브리지 높이를 올리는 공사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으나, 항만 사업부가 강하게 제안해 결정됐고,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게 됐다. 이 공사가 동부지역 모든 항만에 미칠 경제적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뉴욕 뉴저지 항만공사 관계자

장면 2. “한진해운 사태 때 신항의 터미널 지분이 헐값에 넘어가자 부산항만공사는 방어를 위해 신항 4부두 현대상선 터미널 지분 10%를 200억 원에 인수하기로 하고 MOU까지 체결했다. 그러나 이는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결국 4부두는 싱가포르의 PSA로 넘어갔다. 지금 이 지분은 500억 원 줘도 못 살 것이다. ”-부산항만공사 관계자

■PA 이름 무색한 BPA

	부산 중구 중앙동 부산항만공사 건물 입구.

위의 두 장면은 자율 경영을 하고 있는 PA와 그렇지 못한 곳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국내에서 항만공사제가 도입된 것은 2004년. 국가 운영체제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민간기업의 수익성 개념을 도입해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도입됐다.

글로벌 선진 PA들이 자유롭게 업무 영역을 넓히고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는데 반해 BPA는 설립 13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중앙정부의 규제에 매여 부두임대사업자에 머물고 있다.

특히 부산항 신항 터미널 운영사의 외국자본 종속 현상이 심화되면서 항만 운영에 있어서 BPA의 정책 실행력이 먹혀 들지 않고 있다.

지난해 한진해운 법정관리 사태 때 물류대란이 빚어지고 한진해운 선박들이 공해상에 떠있는 사태가 벌어졌다. 신속한 하역 작업을 위해선 타 부두의 협조가 필요했지만 외국계 부두 운영사들은 외면했다.

BPA 운영에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되는 것이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이다. 공운법 및 시행령에는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이 출연·출자기관을 설립하거나 다른 법인에 출연·출자하려면 주무 기관장, 기획재정부장관과 사전 협의를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사전 협의’라고 표현돼 있지만 실제론 ‘승인’사항이라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지난해 BPA는 국적 터미널 사수를 위해 지분 인수를 추진했지만 기재부의 반대에 막혀 아무 역할도 할 수 없었다. 만약 BPA가 당시 지분을 사들였다면 부채비율은 오히려 낮아졌을 것이다. 권한 밖의 일을 시도한 BPA의 노력은 오히려 경영평가에서 감점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BPA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D등급’을 받았다.

해양대 김길수 교수는 5일 “현재 BPA 기능은 과거 부산해수청 부두계에서 하는 일에 머물고 있다. 이러려면 왜 PA를 만들었냐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자율 경영 길 터줘야

BPA가 꿈꾸는 모델은 싱가포르의 PSA, 상하이 SIPG같은 GTO(글로벌 터미널 오퍼레이터)다.

이를 위해선 정부의 규제에서 벗어나야 하고 ‘독립채산제’가 확고히 정착돼 자율 경영과 투자가 가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부산항발전협의회 박인호 대표는 “지금 전세계 PA들이 ‘어소리티(항만공사)’가 아니라 ‘코퍼레이션(물류기업)’으로 변화하고 있다”면서 “6조 원의 자산을 갖고 있고, 매년 1000억 원 넘는 수익을 내는 BPA가 글로벌 물류회사로 자리를 잡는다면 얼마나 많은 부가가치를 내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는가”라고 강조했다.

2004년 BPA 출범에 깊이 관여했던 오거돈 전 해수부 장관은 “부산항만공사법을 따로 만들어서라도 현재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 전 장관은 “공운법에 따른 획일적 규제는 문제가 많다. 항만공사는 도로공사, 한국전력 등과는 성격이 다르다. 장기적으로 미래를 내다보고 빚을 내서라도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공운법과 경영평가가 발목잡아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독립채산 기업으로서 기능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항만공사 관계자는 “BPA 자체 사업을 못하니 기관으로서의 기능이 무의미하다. 현재로선 한국에서 PSA, DP월드 같은 GTO가 나올 수 없는 구조”라면서 “최소한 법에 주어진 미션은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지금은 몇 십억짜리 사업도 기재부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유선 기자 freesun@kookje.co.kr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