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 그리드, 전기 사용 예측
- 요금 저렴할 때 저장한 뒤 사용
- 2030년까지 국가단위 망 구축

- 대용량 저장 ESS가 핵심기술
- 업체 ‘스마트 빌딩’ 선점 경쟁
- 부산 전력 신산업 기업 9곳뿐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최첨단 ICT(정보통신기술)는 생활의 편리함과 기업 생산방식의 변화를 가능케 한다. 이 때문에 흔히 경제 주체들은 스스로 작동하는 가전기기나 공장 내 자동화 시스템을 4차 산업혁명의 주요 분야로 인식한다. 하지만 쉽게 간과하는 분야가 있다. 바로 에너지와 환경이다.

	태양광을 이용한 에너지 저장 시스템을 구현한 모습. LG그룹 공식 블로그 제공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로 대표되는 차세대 전력망은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해 기업뿐 아니라 일반 가정의 전기료 절감에 도움을 준다. 물론 지금은 상용화 단계가 아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이 정착되면 미래의 전기 사용 패턴은 지금과 완전히 달라진다. 특히 정부의 탈(脫) 원전 정책과 밀접하게 맞닿은 부산에서는 ICT를 활용한 대체 에너지 개발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본지는 창간 70주년 기획시리즈 ‘눈 앞에 온 미래, 4차 산업혁명 시대’ 네 번째 순서로 에너지 및 환경 분야에서의 ICT 활용 사례와 기대 효과, 지자체별 현황 등을 알아봤다.

■2020년 스마트 그리드 상용화

#1. 자택에서 주로 근무하는 프리랜서 웹디자이너 A 씨는 IT 업계의 특성상 다른 업종 종사자보다 컴퓨터 사용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다. 하지만 전기료 걱정은 하지 않는다. 집안에 설치된 사물인터넷(IoT) 기기가 전기 요금이 가장 저렴한 시간에 전기를 저장해 두었다가, 작업 시간대에 맞춰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2. 제조업체 B 사에는 에너지 저장장치(ESS)가 설치돼 있다. 크기는 일반 컨테이너와 맞먹는다. 이 장치에는 산업용 전기나 태양광 에너지 등이 저장된다. ESS 덕에 B 사는 낭비되는 에너지를 획기적으로 줄였다. 과거에는 수요를 예측해 전력 공급량을 조절해도 이미 생산된 뒤 사용하지 못한 전기는 그대로 버릴 수밖에 없었다.

주요 기업과 일부 지자체가 개발 중인 스마트 그리드 기술을 통해 미리 구현해 본 지능형 전력망의 모습이다. 지금은 비현실적인 상황으로 비칠 수 있지만 경우에 따라선 이르면 1, 2년 내에 가정과 산업 현장에서 실제로 구현될 수 있다.

스마트 그리드는 기존 전력망에 ICT를 접목해 에너지 효율을 최적화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가령, 필요한 전기량을 사전에 예측하는 방식 등으로 효율을 높여 에너지 낭비를 막거나 전기요금이 가장 저렴한 시간에 전기를 저장한 뒤 필요한 시간에 이를 사용할 수 있다. 매년 여름과 겨울마다 반복되는 전력 부족 사태에 대비할 수도 있다.

	LG전자가 지난 4월 공개한 ESS용 대용량 전력변환장치(PCS).

스마트 그리드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분야로 부상하는 것은 지구 온난화에 따른 전력 수급의 어려움이나 ‘녹색성장’을 위한 에너지 효율 제고, 경제적 가치 창출 등과 무관치 않다. 2010년 당시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가 ‘스마트 그리드 산업 국가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2020년까지 도시 단위, 2030년까지 국가 단위의 지능형 전력망(스마트 그리드)을 구축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이 같은 기대 효과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민·관 공동 분담을 통해 2030년까지 총 27조5000억 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노후 전력망의 현대화를 위해 2003년 ‘그리드 2030’ 프로젝트를 시작한 미국이나 2000년대 중반부터 스마트 그리드 로드맵을 세운 일본과 비교하면 한참 늦었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에너지 효율의 중요성만큼은 우리 정부도 정확하게 인식한 것으로 분석된다.

■부산 전력 신산업 기업 3.8% 불과

	삼성전자가 지난달 ‘2017 대한민국 에너지대전’에서 공개한 ESS. 삼성전자 제공

스마트 그리드를 구현하는 핵심 기술로는 대용량 전기 저장이 가능한 ESS가 꼽힌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미세먼지 감축을 위해 노후 석탄화력 발전소 8곳의 가동을 중단키로 한 데 이어 ‘에너지 정책 전환’(탈 원전) 기조까지 세우면서 신재생 에너지 대책의 핵심인 ESS는 더욱 주목받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25억6000만 달러였던 글로벌 ESS 시장 규모는 2020년과 2025년 각각 150억 달러와 292억 달러로 급증할 전망이다. 이 때문에 ESS를 포함한 스마트 그리드 기술 개발은 정부뿐 아니라 일반 기업에서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017 대한민국 에너지 대전’에서 스마트 빌딩 솔루션인 ‘b.IoT’를 포함한 자사의 ESS 기술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요금이 적게 나오는 시간대에 고효율 운전으로 빌딩의 실내 온도를 조절하고, 요금이 많이 나오는 시간대에는 적은 에너지로 온도를 제어해 에너지 소비를 줄여 주는 시스템이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글로벌 ‘스마트 빌딩’ 시장 규모는 지난해 56억3000만 달러에서 2021년 247억3000만 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 밖에 LG전자(고효율 태양광 모듈), 한화그룹(태양광 사업), KT(에너지 통합관리 플랫폼) 등도 스마트 그리드 기술 개발과 상용화 등에 힘을 쏟고 있다.

문제는 정부의 탈 원전 정책 등으로 환경과 대체 에너지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지만, 정작 대체 에너지 기술 개발 등이 시급한 부산의 여건은 여전히 열악하다는 점이다. 한국스마트그리드협회에 따르면 스마트 그리드 등 전력 신산업을 영위하는 부산의 기업 수는 지난해 말 기준 9개로 전국(235개)의 3.8%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울산과 경남은 각각 2개와 10개였고, 서울(71개) 경기(75개) 인천(11개) 등 수도권이 66.8%나 차지했다.

이 협회 관계자는 “부산이 탈 원전 정책에 따른 에너지 대체 필요성이 사실상 전국에서 가장 큰 데도 기술 개발 등 제반 여건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다만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부산시의 노력은 점차 속도를 내고 있다. 내년까지 1258억 원을 투입해 스마트 그리드 구축에 나서는 한편, 지역 대학에 지능형 전력망을 구축하거나 기업 및 연구인력 양성에도 총력을 쏟기로 했다.

이석주 기자 serenom@kookje.co.kr

◇현재와 미래의 전력망 비교  자료 :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스마트그리드사업단 구분 방식  체계  구조  전력 복구 방식  전기요금 소비자 선택권 기존 전력망  아날로그(전기·기계적)  중앙 집중 방사상 수동  고정 없음  스마트 그리드 디지털(지능형) 분산 네트워크 자동 실시간 다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