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전략실(미전실)을 중심으로 한 삼성그룹의 '원톱' 경영이 계열사별 '책임 경영' 체제로 바뀌면서 1957년 처음으로 도입된 삼성의 신입사원 공채 제도가 60년 만에 폐지된다. 대기업 채용시장의 흐름을 주도해 온 삼성의 이 같은 결정은 다른 그룹의 동조 가능성과 맞물려 '바늘구멍'으로 비유되는 국내 고용시장에 상당한 후폭풍을 가져올 전망이다.

특히 삼성이 그동안 비수도권 인재 등에 대한 채용 쿼터제를 기본 '원칙'으로 삼아왔다는 점에서 당장 올해 하반기부터 개별 채용 방식이 시행될 경우 지방 구직자 등에게 일정 부분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지역 대학 진로담당자 및 취업준비생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가 공식 종료된 28일 미전실 해체를 골자로 한 경영 쇄신안을 발표했다. 1959년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비서실로 출발한 미전실의 해체는 삼성의 '그룹' 체제가 사실상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미전실의 종전 기능은 3대 계열사(전자·생명·물산)로 분산 이전된다. 따라서 60년간 지속돼 온 그룹의 공채 제도는 올해 상반기를 끝으로 폐지된다.

그간 삼성은 그룹 차원의 공채를 통해 매년 1만 명 이상(지난해 1만4000명)의 인재를 뽑았다. 연평균 20만 명가량이 응시하면서 과열 양상도 보였으나 일자리 창출과 고급 인력 배출 같은 순기능도 작용했다. 무엇보다 삼성 미전실은 2012년부터 ▷지방대생 35% ▷저소득층 5% 할당을 기본 원칙으로 정해 놓고 공채를 실시해 왔다. 그러나 계열사별 각자 채용 방식으로 변경되면 극심한 경기 침체와 맞물려 비수도권·고졸·저소득층 등에 대한 채용 쿼터가 무너지거나 '후순위'로 밀릴 것으로 보인다.

부경대 김해철 행정지원실장은 "학교와 학생 모두 삼성그룹 채용 준비를 하던 중 갑작스러운 발표에 크게 혼란스럽다. 삼성그룹의 채용 변화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지방대에 전가될 것"이라며 "대기업 공채는커녕 현재 고졸자들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대졸자가 차지하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부산대의 취업전략과 관계자는 "그동안 부산대의 삼성그룹 취업 성과가 좋았던 것은 삼성의 채용 규모가 대기업 중 가장 크기도 하지만 지방대 출신 할당제도 크게 작용했다"면서 "대학 차원에서 대책 마련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는 삼성의 이 같은 채용 방식이 다른 기업으로 확산될 경우 가뜩이나 침체된 비수도권의 고용시장이 더욱 냉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비수도권 인재(대졸 기준)를 일정 비율로 선발하는 쿼터제를 시행하지 않는 대기업(매출액 상위 500곳 기준) 비율은 지난해 9월 기준 90.7%에 달했다.

이석주 이병욱 기자 sereno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