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개 본부에 예산 자율권 부여
- 책임경영·효율성 강화하기로
- "사실상 지주사 전환 대비작업"

한국거래소(KRX)의 지주회사 전환이 일단 멈췄다. 지주사 전환을 골자로 한 자본시장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연내 국회 통과가 불투명해진 데 따른 결과다. 한국거래소는 그 대신 예산 운영의 자율권을 주어 사업부별 책임경영을 강화한 형태로 조직 변화를 꾀하고 나섰다. 그러나 각 본부 간 경쟁 체제를 조성해 효율성을 높인다는 지주회사 추진 목적과 유사한 방향으로 조직을 정비하는 것이어서 지주회사 예비단계 준비에 나선 것이라는 시선도 금융업계로부터 받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기존의 단일회사 체제는 유지하되 5개 본부별 예산을 따로 책정하고 각 본부장이 책임경영을 하는 방식으로 구조를 바꿀 계획이라고 8일 밝혔다. 비용을 절감하고 내부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서라는 게 거래소의 설명이다. 거래소 측은 또 "예산 매출 수익 등을 독립적으로 운영하면 사업부별로 성과를 쉽게 측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는 각각의 본부가 예산을 책정한 후 사업 변경 등으로 예산 재편성이 필요한 경우 경영지원본부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아 예산 변경 허가를 담당한다. 앞으로는 각 본부에서 사업 성격에 맞춰 예산 책정과 변경을 할 수 있게 된다. 각 본부의 예산에 자율성과 탄력성을 부과한다는 것이다.

현재 거래소는 경영지원본부, 유가증권시장본부, 코스닥시장본부, 파생상품시장본부, 시장감시본부 등 5개 본부 체제이다. 한국거래소 고위 관계자는 "애초 올해 안으로 자본시장법 국회 통과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짜놓은 사업이 많았다. 개정안 통과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개정안의 취지를 살려 단계적으로 절차를 밟아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주회사 전환을 포기한 것이 아니고, 내부적으로 준비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앞서 거래소는 지난해부터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수익 다각화를 위해 지주회사 전환을 추진해왔다. 지난 10월 정찬우 신임 이사장 취임 이후 개정안 통과를 위해 정치권과 접촉을 늘리며 속도전을 벌였지만 정치권의 찬반 논란에 또 다시 부딪힌데다 '최순실 국정 농단'까지 악재가 겹쳤다. 또 부산을 본사로 명기하지 않은 점, 코스피 코스닥 등 자회사를 서울에 둘 것으로 예상되는 점 등에 따른 지역 반발도 컸다. 한국거래소 측의 이번 조직 정비 방침과 관련, 부산경제살리기시민연대 박인호 공동대표는 "결국 지주회사로 가겠다는 것으로 본다"며 "거래소 본사 주소지에 대한 법적 안전장치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한편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지난 7월 국회에 제출돼 지난달 정무위원회에 상정됐지만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중론에 따라 계속 심사 중이다.

김미희 기자 maha@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