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업계 1·2위 세계 물류 주도
- 현실화땐 '해운 자주권' 위협
- 수출 위주 한국경제 휘둘려
세계 해운물류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유럽계 선사들이 법정관리 중인 한진해운을 인수할 가능성이 제기돼 한국 해운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한진해운 사태가 글로벌 물류대란을 유발한 데 이어 대한민국의 '해운 자주권'마저 위협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5일 네덜란드 소재 부산항만공사(BPA) 유럽대표부가 최근 한진해운 사태에 따른 해외 시장 동향을 파악해 본부에 제출한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 현지에서는 세계 최대 해운동맹체(얼라이언스)인 '2M'을 구성하고 있는 머스크 또는 MSC가 한진해운을 매입할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해운동향, 부산항에 미칠 영향, 얼라이언스 변화 등에 대해 유럽 현지 해운물류 연구단체인 드류어리(Drewry), 씨인텔(SeaIntel) 등과 논의한 후 제출한 이 보고서는 특히 지난 6월 구조조정 막바지 단계에서 전격적으로 결정된 현대상선의 2M 가입과 연계해 2M 중 한 개사가 한진해운을 매입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2M의 한진해운 매입설이 현실화될 경우 해운 자주권이 급격히 약화되면서 수출 위주의 한국 경제가 자칫 심각한 동맥경화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내 1위, 세계 7위 컨테이너 해운선사인 한진해운의 추락이 결국 우리나라 해운 주권의 몰락으로 연결되는 셈이다. 623척의 컨테이너선을 보유한 세계 1위 선사인 머스크와 493척의 선박을 보유한 2위 MSC가 합치면 1100척이 넘는데, 이들이 최근까지 경쟁 업체들을 고사시키기 위해 선박 대형화와 운송요금 인하라는 수단을 통해 소위 '치킨게임'을 주도했던 사실을 업계가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컨테이너선 97척을 운용하는 한진해운은 지난 수십 년간 다져온 세계 100여 개 국가의 네트워크와 영업력을 바탕으로 양대 산맥인 2M에 맞서 경쟁력을 유지해온 동북아시아의 대표 선사인데, 이들이 마침내 헐값에 사들일 수도 있게 됐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특히 "이들은 현대상선이 극도로 어려울 때 2M에 가입시켜 줬다는 명분을 앞세워 한국의 주요 수출입업체의 물량을 잡으려 할 것이고, 현대상선의 발언권은 극도로 제한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운임도 초기에는 낮췄다가 서서히 올릴 수 있다. 결국 우리 수출입 제조업체 생산품의 국제 가격 경쟁력은 유럽계 거대 해운사의 가격 정책에 따라 좌우되는 사태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특히 부산항을 이용하는 모든 선사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한진해운이 외국계 선사로 넘어갈 경우 부산경제는 직격탄을 맞게 된다.
BPA 관계자는 "우리 정부가 그렇게까지 사태가 흘러가도록 손 놓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와 전문가들은 2M이 한진해운을 인수한 뒤 차후에 현대상선이 경영 위기를 맞았을 때 자연스럽게 배척해 버리면 결국 우리 해운업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를 여전히 놓지 않고 있다.
이승렬 기자 bungse@kookj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