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물 잃고 모항 없는 컨테이너선
- 신항서 하역작업 후 외항서 대기
- 19개국서 68척 비정상 운항 충격
- BPA "부족한 현금 지원 급선무"

- 김영석 장관 뒤늦은 부산행 눈총
- 노조위원장 "회생안 마련 시급"
- 김 장관 "각 부처도 회생만 생각"
- 부산시 차관급TF 참여 검토 예정

한진해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개시 후 첫 번째 주말을 맞은 부산항은 신항 개장 10년 만에 가장 다급하면서도 우울한 이틀을 보냈다. 컨테이너 고박 업체들의 작업 복귀로 지난 2일부터 부산 신항에 입항해 순차적으로 하역작업을 한 컨테이너선들은 화물을 싣지 못해 텅 빈 상태로 외항 대기 상태에 들어갔다. 또 전 세계 항만에서 기동 불가 선박이 갈수록 늘어 4일에는 총 68척의 발이 묶였다는 소식까지 전해지자 한국 해운 및 항만 산업이 이대로 좌초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부산항을 엄습했다.

김영석(오른쪽) 해양수산부 장관이 4일 부산 신항 한진해운신항만터미널을 방문해 우예종 부산항만공사 사장과 함께 화물 반·출입 현황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모항에서도 화물을 못 싣는 처지

지난 2일 오후 4시 부산 신항 한진터미널에 입항한 한진텐진호는 3072개의 컨테이너 화물을 내려놓았지만, 단 1개의 컨테이너도 싣지 못한 채 다음 기항지를 정하지 못하고 3일 오후 4시 출항해 부산 외항 정박지에서 대기상태에 들어갔다. 2일 오후 8시 입항한 한진롱비치호도 컨테이너 화물 2193개를 내려놓았지만, 마찬가지로 화물을 싣지 못한 채 3일 오후 출항해 한진텐진호 옆 정박지에서 대기 상태에 들어갔다. 12호 태풍 남테운의 북상 소식이 속속 전해지는 가운데 집도 잃고 갈 곳도 없는 '바다의 노숙자'가 된 참담한 상황이다. 3일 밤 입항한 한진마르호도 1663개의 컨테이너를 내려놓고 5일 새벽 2시 출항 예정이지만, 갈 곳이 없다.

이런 가운데 3일에는 한진해운 선박 총 53척(컨테이너선 48척·벌크선 5척)이 국내외 항만 28곳에서 억류 또는 대기 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이 전해지더니 4일에는 전날보다 15척이나 늘어난 총 68척(컨테이너선 61척·벌크선 7척)이 19개 국가 44개 항만에서 비정상적으로 운항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돼 '대한민국발 세계 물류대란' 사태가 더욱 확산됐다.

특히 그동안 괜찮은 것으로 파악되던 일본에서도 하역업체, 도선사, 예선업체 등이 작업을 거부해 3일 오후 2시 현재 나고야항 1척, 요코하마항 1척, 도쿄항 2척 등 4척이 기동 중단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져 부산항은 또 한 번 충격에 빠졌다.

부산항만공사(BPA)는 한진해운 사태의 여파가 부산항을 넘어 국내외로 확산됨에 따라 3일 0시부터 신항사업소에 차민식 경영본부장과 추연우 국제물류사업단장을 공동 단장으로 하는 4개 팀 37명의 현장비상대응팀 가동에 들어갔다. BPA 관계자는 "부족한 현금 지원이 가장 급선무"라는 말로 다급한 현 상황을 대변했다.

■부산 찾은 해수부 장관 "회생 우선"

4일 오후 부산을 찾은 김영석 해수부 장관은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당장 입항을 거부당하는 것은 유동성 문제 때문이다. 정부가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으며, 중소 협력 업체에 긴급 자금을 지원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그러나 특히 노동계를 중심으로 한 항의성 질책도 받았다. 한진해운 노동조합 이요한 위원장은 "한진해운이 죽은 뒤 그 시체 수거 처리 문제부터 버젓이 우선 논의되고 있다"며 "한국 국적선의 해외 압류는 한국 영토가 압류된 것이다. 정부가 회생 의지를 갖고 더 명확한 이행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항의했다. 염경두 전국해상노련 위원장도 "금융위와 법원의 의견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 문제다. 금융위는 청산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법원은 회생 의사를 밝혔다.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며 "정부가 선원 고용 안정 우선을 위해 회생 절차를 더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고 다그쳤다.

김 장관은 "위원장들과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다"며 "법원에서 회생 방향으로 비중을 높이고 있고, 우리 부처도 회생 가능성을 놓지 않고 있으며 억류 선박에 필요한 물자 보급이 원활히 되도록 신속 대응 공문을 각국 대사관에 보냈다"고 말했다. 이어 "전 세계 항만 관련 국가에 현장대응반을 설치해 외교부 중심으로 대응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서병수 부산시장은 김 장관과 별도 면담을 갖고 정부 차관급 테스크포스(TF)에 지역정부 자격으로 부산시의 참여를 요청했고, 김 장관도 긍정적인 검토 방침을 밝혔다.

이승렬 이승륜 기자 bungs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