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족자금 1조~1조3000억 원
- "확보 가능한 자금 4000억 불과"
- 우량자산 거의 남아있지 않아
- 현대상선과 합병 가능성 비관
- 40년 된 해운 대기업 침몰 운명
- 뒷짐 진 정부·한진 대주주 책임론

한진해운이 끝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맞게 됐다. 세계 7위이자 국내 1위인 컨테이너 선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것은 전례가 없는 만큼 부산의 해운·물류산업은 물론 경제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에서 채권단 회의 결과 발표를 마친 뒤 물을 마시고 있다.연합뉴스

■채권단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판단

채권단이 '조건부 자율협약' 종료(다음 달 4일)를 닷새 앞둔 30일 신규지원 불가 방침을 만장일치로 확정한 것은 한진해운에 대한 추가 자금지원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산은에 따르면 채권단의 실사 결과를 토대로 한 한진해운의 부족 자금은 내년까지 1조 원 수준이다. 해운업 불황으로 상황이 더 악화되면 1조3000억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산됐다.

하지만 한진해운은 지난 25일 채권단에 제출한 추가 자구안에서 ▷대한항공을 통한 4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 ▷그 이후 추가 부족자금 발생 시 계열사를 통한 1000억 원 지원 등 최대 5000억 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결국 채권단은 실효성 있는 지원액이 4000억 원에 불과하다고 판단, 최소 6000억 원의 혈세가 투입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신규지원은 없다'는 종전 입장에 맞춰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산은 이동걸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혈세를 쓰는 (채권단) 입장에서 원칙에 따라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이로써 한진해운은 조건부 자율협약에 따라 지난 5월부터 동결됐던 채무가 협약종료 시점에 맞춰 다시 살아나게 돼 법정관리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그 이후에는 법원이 한진해운에 대한 주도권을 갖고 '회생' 또는 '청산'을 결정하게 된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당장 해외 채권자들의 선박압류와 화물 운송계약 해지 등이 불거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청산 절차 개시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구조조정 졸업'을 앞둔 현대상선과의 합병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으나 한진해운의 우량자산이 사실상 남아있지 않은 데다 금융당국 역시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 실현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분석된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날 "현재로서는 합병이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결국 청산 절차에 들어갈 경우 한진해운은 1977년 창사 이후 4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정부·한진 대주주 책임론 제기

정부와 한진 수뇌부를 향한 책임론도 불거지고 있다. 그간 한진그룹 대주주들이 '소극적인 사재출연 의지'와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등을 보여온 데다 정부마저 이해 당사자들 간 고통 분담을 강조하며 '금융당국 차원의 신규 지원은 없다'는 원칙만 고수해왔기 때문이다.

조건부 자율협약이 개시된 이후 산은을 포함한 채권단은 한진해운이 용선료 인하 협상에 성공해도 최소 1조 원의 자금이 부족할 것으로 보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재 출연 등을 포함한 추가 자구안을 요청했다. 그러나 조 회장은 4000억 원 이상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를 놓고 채권단 내부와 업계에서는 "한진그룹이 최소한의 성의도 보이지 않고 있다" "조 회장이 법정관리를 각오한 것 같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지난 26일 산은 정용석 부행장이 긴급 브리핑까지 열고 이례적으로 한진해운의 추가 자구안 내용을 공개한 것도 이 같은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지난 4월 자율협약 신청 발표 직전 한진해운 주식을 처분해 모럴해저드 논란을 불러온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 역시 그간 기업 회생을 위한 어떠한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는 게 회사 내부의 지적이다. 금융당국에 대한 업계의 비판도 거세다. 한국선주협회 김영무 상근부회장은 "정부가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업계에는 10조 원 이상의 유동자금을 지원했으나 한진해운에 대해서는 '자체 해결'만을 강조했다"고 토로했다.

이석주 기자 sereno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