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휴대전화 생산을 못할 수 있다는 얘기가 회자된 적이 있다. 휴대전화 매출 세계 2위의 기업이 휴대전화를 생산하지 못한다는 것은 회사가 존립하지 못한다는 말과 같다. 그런 얘기를 처음 꺼낸 사람이 기업의 가치를 파악하는 외국계 증권회사의 애널리스트였다는 점이 더욱 놀라웠다. 그의 말에는 전제가 있었다. 삼성전자가 세계적인 경쟁 상황에서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혁신가의 딜레마'에 빠진다면 현재의 기업 위치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때 휴대전화 세계 1위 기업이었던 핀란드 노키아처럼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회사가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삼성이 망할 수도 있다는 애널리스트 말의 진위 여부를 떠나 사람들은 삼성이 혁신가의 딜레마를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혁신가의 딜레마는 시장 선도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한계에 이르러 더 이상의 혁신을 이루지 못하고 기존 제품의 성능을 개선하는 데 그치면서, 새 기술로 무장한 후발 기업에 시장 지배력을 잠식당하는 현상을 말한다.

현재 부산 주택시장도 혁신가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여전히 분양시장은 호조를 보이고 있고 가격도 올라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내년 아파트 2만여 세대가 준공되고 내후년에도 입주하는 세대가 2만여 세대에 달한다. 올해 분양물량을 포함하면 3년 이내에 부산에 최소 4만5000세대의 아파트가 분양 및 입주 한다. 인구가 늘거나 외지에서 유입될 요인이 생겨서 지역 실수요자가 갑자기 늘어날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하면 지역 내 교체 수요자가 상당 부분 준공 물량을 해소시켜 주어야 한다. 주택시장이 혁신가의 딜레마에 빠진 격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주택시장에 드리운 혁신가의 딜레마라는 구름을 걷어 낼 수 있을까? 지자체에서는 큰 그림을 통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가덕도 신공항 유치 여부가 조만간 발표된다. 이에 따라 많은 것들이 출렁일 수 있다. 에코델타시티, 북항재개발, 제2센텀시티, 동부산관광단지 등 단순한 정치적 레토릭으로서의 개발 재료가 아닌, 내실 있는 지역성장의 엔진이 될 수 있는 파괴적 혁신이 요구된다. 그렇지 않으면 부산은 당면한 입주물량 폭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서정렬 영산대 부동산금융학과 교수·주택도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