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개성공단에서 남측 인원을 전원 추방하겠다고 발표한 11일 정기섭 개성공단기업협회장이 침통한 표정으로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이용우 기자 ywlee@kookje.co.kr

- 5개 기업, 협력사만 400곳 달해
- 바이어 손배소 등 잇따를 전망

- 규모 가장 큰 기업 삼덕통상은
- 연 300만 켤레 신발 생산 차질

- 경협보험 가입업체 절반 불과
- "2013년 때보다 상황 훨씬 나빠"

11일 북한이 개성공단에 진출한 기업의 모든 자산을 전면 동결하면서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당혹감을 넘어 눈덩이처럼 불어날 피해 상황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특히 개성공단에 입주한 부산기업의 협력부품업체만 400곳 이상인 데다 수백억 원대에 이르는 장비와 설비 등을 반출할 수 없게 되면서 지역 경제계에 미칠 피해액만도 수천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개성공단에 입주한 부산 기업은 신발 완제품을 생산하는 삼덕통상과 신발부품 생산 기업인 바라크(제이드엠) 천일상사 유성산업, 섬유업체 유영어패럴 등 총 5개 업체다. 이들 업체는 개성공단 가동 중단에 이어 자산 전면 동결 방침이라는 발표가 잇따라 터져 나오자 "최악의 사태가 빚어졌다"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 중 최대 규모인 삼덕통상은 부산 본사 공장과 개성공단 공장의 생산 비중이 5 대 5 정도로 개성공단에서 연간 300만 켤레의 신발을 생산하고 있다.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측 근로자만 2800여 명이다. 삼덕통상 관계자는 "자산동결 때문에 공장 설비는 물론 자재와 완제품도 개성공단에 놓고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서 "장비와 설비 피해는 물론 바이어로부터의 손해배상 요구와 협력업체 피해 등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부산에 있는 천일상사는 630여 명의 북한 근로자를 투입해 연간 60만∼70만 켤레를 OEM(주문자상표부착) 방식으로 생산하고 있다. 반제품의 100%를 개성공단에서 생산하고 있어 다른 업체보다 더 심각한 피해가 예상된다. 540여 명의 북한 근로자를 고용해 10여 개 브랜드에 납품하는 제이드엠도 막대한 차질을 빚을 것으로 전망했다. 제이드엠 관계자는 "우리 회사뿐 아니라 거래업체 생산 일정 역시 지연이 불가피해 연쇄적인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남북관계 경색으로 개성공단 가동이 160일간 중단됐던 2013년 당시 기업들이 통일부에 신고한 피해액은 1조566억 원이었는데 이 가운데 원청업체 납품채무와 재고자산이 각각 2400억 원과 2000억 원에 달했다. 기반시설은 차치하더라도 원·부자재와 완제품, 이동할 수 있는 소규모 생산설비를 옮길 수 있게 우리 정부가 철수 시한을 늘려 달라고 업체들이 요구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남북경협보험 가입 기업은 손실액의 90% 범위에서 최대 70억 원까지 보상을 받을 수 있으며 금융지원 등의 조치도 함께 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입주기업들은 현재 입주한 124개 업체 가운데 보험에 가입한 업체가 76개밖에 되지 않는 데다 거래처 단절 등 미래에 발생할 영업손실은 물론 원·부자재 손실에 대해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재산 피해가 막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이날 서울청사에서 이석준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개성공단 입주기업 지원정부합동대책반 1차 회의를 열어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현장지원반을 설치하고 기업들을 실시간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는 특히 조업 중단으로 인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생산차질과 자금조달 등 시급한 사안을 먼저 해결하기 위해 기존 대출 상환유예, 긴급 경영안정자금 지원 등의 조치를 우선적으로 취해 나가기로 했다.

부산시도 개성공단 가동 중단 관련 상황대책반을 긴급 구성하고 기업지원, 시민안전, 물자·장비 철수, 세제지원, 대체입지 마련 등 분야별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기로 했다. 시 통상진흥과 남북경제협력팀 관계자는 "현재 남북경제협력기금을 통해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을 파악 중이며, 운전 및 설비자금 지원 등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은정 황윤정 기자 iej09@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