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好手)가 아니라면 묘수(妙手)라도, 그것도 아니라면 악수(惡手)나 과수(過手)라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때가 있다. 판을 새롭게 엎고 경기를 재개할 수 없다면 이밖에 달리 수가 없기 때문이다. 24일 부산공동어시장에서 현대화 사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이런 바둑의 수 두기가 떠올랐다. 최근 예산 범위에서 감당이 안 되는 사업 요구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판을 엎고 다시 해야 할지, 악수라도 고민해야 하는지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문제가 불거진 것은 지난 21일 현대화 실무회의에서였다. 시장의 한 조합이 현대화 설계에 체험관광, 수산물 전처리 유통가공(FPC), 외국인복지관 등 특수시설이 제외돼선 안 된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이다. 이런 지적이 처음 나온 것은 지난해 11월 현대화 자문팀이 작성한 설계 지침 공개 때였다. 당시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에 따른 사업비(1724억 원)에 맞추기 위해 애초 포함이 예상됐던 FPC 등 특수시설이 설계에서 제외됐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사업이 축소돼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논란 끝에 FPC와 선원센터는 부지를 설계에 반영한 뒤 현대화 이후 추가 추진하는 쪽으로 합의가 이뤄졌다. 이후 공은 추진단과 기재부가 진행 중인 총사업비 조정 협의로 넘어갔다. 용역업체의 타당성 분석 결과 예상 사업비가 KDI 예타 때보다 26%가량(456억 원) 늘었다. FPC 설비에 대비한 적정 폐수처리 용량을 확보해야 하며, 적자를 면치 못하는 냉동창고 확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추진단은 20% 내 증액(2안)을 기재부에 우선 제안한 뒤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26% 증액(1안)을 추진하겠다는 전략이다. 1안의 경우 기재부 지침에 따라 KDI 타당성 재조사를 받아야 해 사업이 최소 6개월 이상 지연된다. 이쯤 되자 시장 안팎에서는 "타당성 재조사를 하더라도 1안을 선택해 제대로 하자"는 주장과 함께 "이 계기에 특수시설을 추가하자"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이에 추진단은 "증액된 돈으로 폐수처리 등 기본시설만 개선하는 정도"라며 "예상 밖의 요구에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특수시설 도입을 위해서는 최초 기획단계로 돌아가 타당성 조사를 다시 해야 한다. 외국인복지관은 예산을 초과하며, FPC는 HACCP 인증과 함께 현재와 다른 기준의 막대한 예산을 따야 하기 때문이다. 또 체험관광시설은 지금껏 콘텐츠, 예산 등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