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택 국제해사기구 사무총장 당선인

- 3월 출사표 때만 하더라도 당선 희박
- 정부·해양수산업계 똘똘 뭉쳐 지원
- '함께하는 항해' 슬로건 내걸고
- 유럽·비유럽 갈등 조정자 전략 주효
- 덴마크 후보와 대접전 끝에 결국 승리

- 또 한 명의 국제기구 수장 탄생
- 국제 해운·조선시장 정책 등 선도
- 국내업계에 신속한 정보제공 가능
- 부산 지역경제에도 새 활력 기대

국제해사기구(IMO) 사무총장에 임기택 부산항만공사(BPA) 사장이 당선되면서 우리나라의 국제 위상이 높아지고, 국익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제기구의 한국인 수장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김용 세계은행 총재, 고(故)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정도.

선거운동 과정에서 '아킬레스건'으로 지적됐던 세월호 참사를 극복하고, 막판 뒤집기에 성공한 것은 선진·유럽국 대 중진·개발도상·비유럽국 간 대결구도 속에서 갈등조정자임을 내세운 선거전략이 먹혀들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임 후보가 선거 슬로건을 '함께하는 항해(A Voyage Together)'로 정한 것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첨예한 이해관계를 조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정부 차원의 총력 지원은 물론 해양수산계 노사가 이례적으로 뭉쳐 'IMO 사무총장 선출지원협의회'를 구성해 전폭적인 지지에 나선 것도 승리의 밑거름이 됐다.

■'함께하는 항해'로 막판 뒤집기

임 후보가 지난 3월 말 IMO 사무총장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출사표(본지 지난 3월 25일 자 2·18면 보도)를 던졌을 때만 해도 당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았다. 현 일본 세키미즈 고지 사무총장이 지난해 10월 부인 병환을 이유로 연임 포기 의사를 밝히자마자 덴마크 안드레아스 노르드세쓰 후보가 일찌감치 선거운동에 뛰어들었지만 임 후보는 몇 개월 늦게 가세했다. 게다가 6명의 후보 중 아시아에서 한국과 필리핀 등 두 나라가 출마해 표가 분산될 소지가 있는 것도 약점으로 꼽혔다.

세월호 참사도 악재였다. 임 후보는 "선거운동 기간 투표권을 가진 40개 이사국을 돌며 선거운동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해사안전을 지키지 않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나라에서 IMO 사무총장을 맡을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라고 하소연했다.

임 후보는 IMO 기국협약준수전문위원회(FSI) 의장으로 재임할 당시 첨예한 갈등을 원만하게 조율했던 경험과 리더십을 살려 회원국 모두가 함께하는 조화로운 해사안전정책을 만들겠다는 중재자론을 펴 주효했다. 이를 발판으로 덴마크 후보와 2강 구도를 형성하며 선거판도를 뒤집을 수 있는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해사안전 기준 강화에 적극적인 덴마크 후보를 견제하려는 비유럽권 국가의 견제심리도 작용했다. 비유럽권 국가는 자국 조선 및 해운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급진적인 해사안전 기준 강화보다 점진적인 변화를 원해 '임기택 카드'를 선택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파나마가 지난 24일 임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본지 지난 25일 자 16면 보도)하면서 판세가 뒤집히기 시작했으며, 결국 승리의 여신은 임 후보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침체한 조선·해운업 재도약 전기

한국인 IMO 사무총장이 탄생하면서 국내 조선산업과 해운산업의 위상이 한층 높아지고, 국가 이미지와 대외 신뢰도가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침체의 늪에 빠진 국내 조선업과 해운업을 재도약시키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해양수산부는 한국해양대에 의뢰해 1981년부터 2006년까지 25년간 IMO 협약 제·개정에 따른 국내 경제 파급효과를 조사했더니 해운산업 5조3000억 원, 조선산업 11조3000억 원, 전·후방 연관효과 24조3000억 등 모두 40조90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각국이 전략적 의제 발굴·제출·채택 등 자국에 유리한 규범을 마련하려고 IMO 활동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조선박 이중선체, 선박평형수 설비, e-내비게이션 의무화 같은 IMO 규정이 언제, 어떻게 적용되느냐에 따라 적게는 수조 원, 많게는 수십조 원의 시장이 영향을 받는다.

임 후보는 "IMO 사무총장을 배출하면 우리나라는 급변하는 조선·해운시장의 변화를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추격자(follower)에서 벗어나 정보 흐름을 읽어가며 규정을 만드는 선도자(rule maker)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대한민국은 물론 해양수도이자 조선·기자재·해양플랜트산업을 특화한 부산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사정 한마음 총력 지원

임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태스크포스(TF)가 3월 18일 꾸려진 데 이어 한국선주협회, 전국해양산업총연합회, 부산항운노조, 전국해양산업노조연맹 등 해양수산계 노사가 4월 20일 'IMO 사무총장 선출 지원협의회'를 발족해 측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은 선거기간 영국 런던에 두 번 출장을 가서 외국 대표단을 대상으로 초청 리셉션을 주최하는 등 득표활동을 폈다.

이처럼 노사정이 한마음으로 총력 지원한 덕택에 2011년 IMO 사무총장 선거 당시 채이식 고려대 교수가 1차 투표에서 탈락했던 트라우마를 떨쳐내고 한국인 사무총장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IMO 사무총장 지원협의회' 실무추진위원장을 맡은 김영무 한국선주협회 전무, 임성남 주영국 한국대사, 김민종 해수부 해사안전과장이 실무적으로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