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억 이상 인출 전년비 22.4%↑
- 금융창구에 관련 문의 폭주

"금융실명제법 개정안이 시행되기 이전에 개설한 계좌도 소급적용해 처벌을 받는 건지, 계모임의 총무를 맡으면서 만든 계좌는 그대로 유지해도 되는 건지 궁금한데, 은행에서도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아 답답합니다."(60대 남성)

"개정안의 불법 또는 선의 거래의 기준이 모호해 고객 응대에 어려움이 많아요. 특히 개정안에는 불법 계좌를 개설해준 금융인까지 처벌받게끔 돼 있어 설명 의무를 강화하고 있습니다."(시중은행 지점장)

불법 차명 거래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의 개정된 금융실명제법 시행(29일)을 앞두고 시장이 혼란에 빠졌다. 자산가들이 기존 차명 계좌를 정리하면서 은행권에서는 거액 인출이 크게 늘고 있다. 금융 창구에도 고객의 차명 계좌 관련 문의가 폭주하고 있다.

20일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부터 10월까지 국내 10개 은행에서 일어난 1억 원 이상의 거액 인출 금액(개인 기준)은 모두 484조5468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8조8888억 원(22.4%) 증가한 수치다. 은행권의 거액 인출은 지난해부터 계속 감소하다가 올 하반기부터 증가세로 돌아섰다. 거액 인출은 지난 6월 전년 동기보다 7.3% 증가한 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이는 지난 5월 국회에서 통과된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 개정안, 일명 차명거래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세테크'를 위해 자금을 쪼개놓았던 자산가들이 차명 계좌를 정리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자산가들은 연간 2000만 원 이상의 이자나 배당소득을 올렸을 때 부담해야 할 금융소득종합과세나 증여세를 피하고자 가족 및 친지 명의의 통장에 돈을 분산 예치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개정안에 따르면 탈세 등 불법을 저지를 목적으로 차명계좌를 개설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부산의 한 시중은행 PB센터장은 "법 시행 이전에 차명계좌를 개설했더라도 차후에 만기가 돌아와 이자소득이 발생하는 시점에 적발되면 세금징수뿐 아니라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며 "남은 기간 고객에게 계좌를 정리하라고 안내하고 있지만, 기존처럼 '안 걸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고객도 많다"고 말했다.

차명 거래를 방조한 금융회사 직원도 동일한 처벌 조항을 적용받게 되면서 은행권도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특히 동창회 종친회 교회 등 개정안이 허용하는 '선의의 차명 거래'의 기준이 어디까지인지 모호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은행연합회는 이런 개정안 관련 질문을 각 은행에서 받아 금융당국에 질의한 상태다. 한 은행 관계자는 "개정안 시행으로 금융기관 창구에서 획득해야 할 고객정보가 증가하고 고객의 혼란이 예상된다"면서 "과도한 금융거래 불안 심리가 생기지 않도록 불법 거래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