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남극탐험대 귀국보고회에 선 이동화(왼쪽 두 번째) 남경엔지니어링토건 대표.

- 근로자들 독려, 공사 서둘러
- 불과 5개월 만에 기지 완공
- 30년 가까이 극지연구 산실로

국내에 돌아오자 변화를 실감했다. 남극탐험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높았다. 모든 언론매체가 우리의 활약상을 소개했다. 언론의 보도 열기에 고무된 우리는 전국 순회를 시도했다. 남극에서 찍은 사진과 장비를 전시하고 설명하는 그런 행사였다. 서울에서 시작해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 5대 도시를 돌며 순회 전시를 했다. 물론 신비에 싸인 남극대륙에 대한 설명회도 곁들여졌다. 그리고 남극대원들의 사인회도 가졌다. 우린 이미 유명인이 돼 있었고, 사인회는 길게 줄이 이어졌다.

　그런 인기도 잠시, 소원을 성취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남극 탐험의 꿈을 이뤘지만 꿈이 밥을 먹여주지는 않았다. 남극에 가기 전 직장에 사표를 냈었다. 그러니 실업자로 맞이하는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그런 답답함 속에 한 줄기 서광이 비쳤다. 나의 기개를 높이 산 탓인지 국가기관에서 근무를 제의해 온 것이다. 모 방송국에서는 수중촬영전문 카메라 기자 채용을 제안했다. 그것도 아니면 관리직도 좋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내게 맞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아내가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나는 아마 집에서 쫓겨났을지도 모른다.

　얼마 뒤 나는 자갈치시장 바닥 위에 서 있었다. 아침 부두의 갈매기와 온갖 신선한 해산물, 바다 내음…. 살아서 펄떡펄떡 뛰는 역동적인 삶의 현장이었다. 나는 그 자갈치 시장이 어떤 직장보다 마음 편하고 좋았다. 그래서 맡은 일이 수산물 중매인 보조였다. 새벽에 경매 받은 어패류를 1t 봉고차에 싣고 상인에게 나눠주고 수금하는 것으로 일과는 끝났다.

	남극탐험전 팸플릿.

　여담이지만 나는 자갈치시장에 있으면서 전설적인 두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현재 잠수기수협 조합장을 하는 김정길 씨와 경매사 김용경 씨는 그 바닥의 전설이었다.

　자갈치에 몸담던 시절인 1987년 어느 날, 국무총리 비서실장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세종기지 건설단이 곧 남극에 가는데 남극을 알고 있는 안전담당관이 필요하다며 같이 가겠느냐고 의향을 타진해 온 것이다. 오매불망, 얼마나 기다렸던 일인가. 나는 체면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흔쾌히 수락했다. 다시 남극에 가고 싶은 희망이 현실로 되는 순간이었다.

　현대건설 안전담당관으로 현장에서의 안전을 책임지는 일을 맡았다. 건설단은 168명으로 꾸려졌고 내가 인솔 책임자였다. 1987년 9월, 세계 유일하게 1200t 크레인이 탑재된 '현대HHI-1200호'는 기지를 짓는 데 필요한 모든 물자를 싣고 남극으로 향했다. 건설단은 현대HHI-1200호가 칠레에 도착하는 시점에 맞춰 건설단 인력이 합류했다. 미국을 거쳐 칠레에 간 다음 거기서 그 배를 탄 것이다. 다시 1주일 걸려 세종기지 건설 예정부지 앞바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공사는 시작하자마자 난공사였다. 대형 선박의 접안이 안 돼 바지선을 이용했다. 배에 싣고 온 바지선을 크레인으로 바다 위에 내린 다음 중장비를 비롯한 모든 물자를 그 위에 실었다. 다시 예인선이 바지선을 뭍까지 끌고 갔다. 그곳엔 길조차 없으니 길을 내며 전진해야 했다. 먼저 중장비가 길을 닦으면 조금씩 세종기지 부지로 다가가는 형식이었다.

　일단 모든 장비와 물자가 이송되자 공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안전담당관인 내가 하는 일 중 특별한 것은 술 관리. 식사 때가 되면 추위를 잊기 위해 반주로 소주 한 잔씩을 지급했다. 그게 현장 근로자에게 가당키나 하겠는가. 공사기간은 하늘이 무너져도 반드시 맞춰야 한다. 한데 추운 날씨에 일만 하는 근로자들은 특별한 낙이 없으니 소주를 달라고 졸랐다. 나는 이걸 잘 이용했다. 공사 하나하나의 구간이 끝날 때마다. 소주를 주기로 한 것이다. 이런 방법은 꽤 효과를 냈다.

　세종기지는 5개월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공사 속도가 빠른 건 이유가 있었다. 건물은 컨테이너식으로 미리 만들어갔다. 현지에서는 조립만 제대로 하면 끝이었다. 기초공사도 1m만 파면 영구 동토라 더 팔 이유가 없었다. 국내에서 가져간 두께 1m짜리 기초를 땅 1m를 파고 묻으면 그만이었다. 그만큼 치밀하게 준비가 돼 있었다.

　주변 기지의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당신네 기지는 3년 안에 다 날아가고 말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자신들이 3년에서 5년에 걸쳐 지은 것을 5개월 만에 지었으니 그런 소리가 나올 만했다. 하지만 세종기지는 최근 약간의 보수가 있었지만 30년 가까이 잘 버티고 있다.

　이듬해 3월, 귀국 채비를 할 무렵 해양연구소 남극 1차 월동대 10명이 세종기지에 도착했다. 그들은 너무나 준비가 덜 된 상태였다. 쌀을 제외한 기호품, 생필품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자기네들도 황당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월동대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었는지 본국과 의논한 뒤 남극체류 경험이 있는 나보고 기지에 남아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나로서도 가족이 보고 싶긴 했지만 한참 극지 생활에 매료돼 있었다. 5개월의 극지 생활은 조금 짧지 않나, 그런 생각이었다. 그 뒤 나는 졸지에 해양연구소 세종기지 1차 월동대원이 되었다. 그리고 1989년 2월까지 해양연구소 직원으로 발령을 받고 다시 남극에서 근무하게 된다.

남경엔지니어링토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