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학력고사 세대'이다. '당신은 12년간 학교를 다녔는가, 아니면 4년을 더해 16년을 다녔는가', 즉 노동력의 후천적 이질성인 고졸 혹은 대졸이라는 학력에 따라 채용·승진·임금 등에서 차별이 존재하는 고용관리 관행에 좌우되면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 졸업장 효과(diploma effect)가 우리나라처럼 강하게 영향력을 미치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강력한 졸업장 효과는 대학 진학률 80%를 웃도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고, 학력 인플레는 대졸 고학력자의 높은 실업을 유발해 엄청난 직간접적 비용을 초래하고 있다.

최근 금융권에서 촉발된 고졸 채용 확대가 일반 대기업까지 확대되는, 일종의 '고졸 채용 붐'이 일어나고 있다. 좀처럼 믿기 힘든 상황이다. 일자리가 부족했던 고졸자들에게는 분명히 희소식임에 틀림없고, 너도나도 대학에 진학하려는 사회적 분위기를 완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점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먼저 중소기업의 인력 부족 문제가 더 심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대졸자들의 중소기업 취업 회피가 심각한 상황에서 고졸자들도 취업의 눈높이를 대기업으로 맞추게 되면 중소기업은 그만큼 인력 확보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임금 지급 능력이 대기업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상황에서 고임금을 제시할 수 있는 중소기업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마이스터고 출신 기능공들 대부분이 대기업을 선호하게 될 경우, 중소기업은 대졸 기술자뿐만 아니라 고졸 기능공도 구하기 힘들게 될 것이다. 결국 중소기업의 생산성 향상은 점점 어려워지고, 이는 원청업체인 대기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고 고졸 채용이 주로 비정규직 형태로 이루어진다면 기존의 학력 차별에다 고용 형태 차별까지 더해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대기업들이 계획하고 있는 것처럼 고졸자 비중을 지금보다 더 늘리게 되면 비정규직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고졸 채용 정책의 우선순위를 중소기업에 맞추면 어떨까. 단기간에 대학 진학률이 급감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고려할 때 대기업은 당장 노동력 부족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고졸자들이 대기업 대신 중소·중견기업에 우선 채용될 수 있도록 중소기업과 졸업생들에게 각종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중소기업 청년취업자에 대한 근로소득세 3년 면제, 고용 증가 중소기업에 대한 세액공제 등은 꼭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고졸자도 대기업에 갈 수 있다는 상징성을 강하게 부여함으로써 무조건적인 대학 진학을 완화하겠다는 취지에 수긍이 간다. 하지만 인력부족으로 인해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많아진 미래의 고졸자들은 어디에 취업을 할 수 있겠는가.

결코 쉽지 않은 선택임에는 틀림없지만 중소기업의 입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부산경제진흥원 경제동향분석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