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맞대응 악순환 바람직 않아”
- 일본정부 수출규제 즉각 철회
- 양국 간 성의 있는 협의 촉구

- 지나친 위기 조장 삼가 당부
- “경제구조 해결 계기 삼겠다”

- 홍남기 대외경제장관회의 참석
- 국제사회와 다각적 대응 통한
- 기업 피해 최소화·지원 밝혀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와 관련해 “한국 기업에 피해가 실제로 발생할 경우 우리 정부로서도 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저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며 일본에 상응 조치를 시사했다. 문 대통령이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관해 공개 석상에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수석·보좌관 회의를 열고 이같이 말한 뒤 “일본 측의 조치 철회와 양국 간 성의 있는 협의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문재인(오른쪽) 대통령이 8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 일본에 첫 경고

문 대통령은 “최근 일본의 무역 제한 조치에 따라 우리 기업의 생산 차질이 우려되고 전 세계 공급망이 위협을 받는 상황에 처했다”며 “상호 호혜적인 민간 기업 간 거래를 정치적 목적으로 제한하려는 움직임에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청와대가 일본의 수출 규제를 ‘보복적 성격’이라고 규정한 데 이어 문 대통령이 ‘정치적 목적’이라고 언급함으로써 일본의 조치에 정당성이 없음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참의원 선거 유세에 나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7일(현지시간) 도쿄 인근 후나바시 거리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울러 국제사회의 여론을 유리하게 형성해 일본을 압박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통령은 대응과 맞대응의 악순환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며 외교적 해결에 방점을 뒀다. 이어 “무역은 공동번영의 도구여야 한다는 국제사회 믿음과 일본이 늘 주창해온 자유무역의 원칙으로 되돌아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이런 발언에 대해 “외교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당부로 이해해달라”라며 “양국 간 우호 관계가 더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는 강력한 촉구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일본 수출 규제와 관련해 침묵하던 문 대통령이 대 일본 메시지를 낸 데 대해서는 “국민적 관심이 워낙 높고 불안해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수 있다”며 “국민을 향한 메시지이고, 일본과 맞대응으로 악순환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촉구이기도 하다”고 했다.

또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이날 우리나라 신용등급 평가를 Aa2로 유지하기로 하고 등급 전망을 안정적으로 평가한 것을 언급하면서 “지나치게 위기를 조장하고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은 오히려 경제 심리를 위축시키고 우리 경제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아울러 “중·장기적 안목으로, 수십 년간 누적되어온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계기로 삼겠다. 한일 양국 간 무역 관계도 더욱 호혜적이고 균형 있게 발전 시켜 심각한 무역수지 적자를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일본 수출 규제의 직격탄을 맞은 핵심 부품 문제와 관련해서는 “제조업 르네상스 전략의 핵심도 부품·소재·장비의 국산화 등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다. 산업의 허리가 튼튼해야 어떤 어려움이 다가와도 헤쳐나갈 수 있다”며 부품·소재·장비산업 육성을 국가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삼고, 예산·세제 등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기업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기업에는 기술개발·투자 확대, 부품 소재 업체와 상생 협력을 통해 대외의존형 산업 구조에서 탈피하는 데 힘써 달라고 당부했다.

■홍 부총리, 국제사회와 공동 대응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는 글로벌 경제 전체에 대해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며 일본의 즉각적인 철회를 촉구했다. 홍 부총리는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206차 대외경제장관회의에 참석해 모두 발언을 통해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는 철회돼야 한다. 일본의 수출 규제조치는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배치되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홍 부총리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와 관련, “우리 업계 및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소통, 공조 등을 통해 다각적이고도 적극적인 대응을 지속해나갈 것”이라며 “우리 기업의 피해 최소화와 대응 지원에도 역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이어 “하반기에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등 다자적 논의가 예정돼 있다”며 “글로벌 경제의 성장과 보호무역주의의 확산 방지를 위한 국제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회의는 올해 하반기 들어 처음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로, 미중 무역 갈등과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일본의 수출 규제 등 세계 불확실성 증대 요인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김태경 이민용 기자 tgkim@kookje.co.kr